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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더위야 그만 물러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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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더위야 그만 물러가거라

입력
2006.08.18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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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7월에는 그토록 비를 퍼부어대더니, 8월에는 찜통더위로 사람을 괴롭힌다. 사람들을 만나면 다들 더위에 축 늘어져 시든 이파리 같다.

나도 집에서 선풍기 하나에 기대어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아는 선생님을 만난 김에, 더위 때문에 아무 일도 못하고 있노라 말씀드리니, 에어컨도 없느냐며 의아한 표정을 지으신다. 그 표정이 생각나 어제는 인터넷으로 에어컨 가격을 다 알아보았다. 하지만 결국 사지 않기로 했다.

● 에어컨 유감

물론 에어컨을 설치하고는 시원한 방안에서 뒹굴며 마음껏 책을 읽고 싶다. 밤에 땀에 절어 서너 번씩 깨고, 낮 동안은 부족한 잠 때문에 멍하니 앉아 있는 생각을 하면, 그게 훨씬 더 효율적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게다가 이 더위에 음식을 준비하느라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부엌에서 고생하는 아내를 보면, 시원함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아내만 좋다면 핑곗김에 얼마든지 사겠는데 말이다.

그런데 물어보니 싫다고 한다. 그 차가운 바람이 느낌이 좋지 않다나. 그리고 다들 이렇게 에너지를 써가며 열기를 밖으로 내보내기에 서울의 대기가 뜨거워진 것이라고 오금을 박는다. 그래서 결국 내가 물러서기로 했다.

나 스스로 지구의 환경을 걱정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해왔기 때문이다. 사실 에어컨이 없느냐고 물어보신 선생님께도 내가 생태주의자라 에어컨을 사기가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더위에 지치면 나도 모르게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을 그리워한다. 아무리 선풍기를 틀어도 더위가 가시지 않는, 요 두어 주는 더욱 그랬다.

그런데 나를 덥게 하는 것이 또 있다. 방송사의 판에 박힌 뉴스가 그렇다. 해마다 여름이나 겨울이 오면, 곳곳에서 에너지를 절약하자고 외친다. 에너지 자원을 갖지 못한 나라에서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요즘은 국제유가도 장난이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여름 방송사는 에너지 절약 캠페인에 열을 올린다. 요즘처럼 전력사용량이 연일 신기록을 기록할라치면 더 호들갑을 떤다. 그리고는 앵무새처럼 관공서를 찾아가 솔선수범하지 않는다고 되뇐다. 정작 방송사는 에너지 절약에 나서지 않으며. 내가 경험한 바로는 그렇다.

● 판에 박힌 TV뉴스

마침 며칠 전 학교 일로 정부기관에 갈 일이 있었다. 시원한 에어컨을 그리며 갔는데, 영 아니었다. 공무원들은 작은 선풍기를 두고 씨름하고 있었다.

불쑥 들이닥칠 방송사의 카메라와, 생색내기 좋아하는 높은 분들의 엄명이 신경 쓰이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는 천장 전등마저 중간 중간 꺼놓고 있었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효율적인 대책일까?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들만큼은 쾌적한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지 않나? 공무원들만이 아니라 공적 업무를 위해 봉사하는 모든 분들에게 말이다.

나는 그래서 오늘도 선풍기를 하나 켜놓고 의자에 앉는다. 땀을 흘릴 각오를 하고서. 이 여름 쉬지 못 하고 일하는 분들을 생각하면, 집에서 샤워라도 할 수 있는 나는 행복한 게 아닐까 위로하면서. 그래도 더위야 이제는 그만 물러가라!

박철화 문학평론가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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