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도서관이 18일 ‘조선고등법원 판결록’ 2권 민사편을 발간했다. 이 책은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직후인 1912~14년 조선총독부 고등법원(현 대법원에 해당) 판결 112건의 원문과 번역문을 함께 수록하고 있다.
판결록에는 순종 박영효 이완용 등 당시 유명 인사들에 대한 소송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소송 내용도 포함돼 있어 사법사와 생활사 사료로 높은 가치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법원 도서관은 당시 판례들을 번역해 지난해부터 순차적으로 발간하고 있다.
●순종을 상대로 소송
정모씨는 1914년 ‘창덕궁 이왕(李王)’을 상대로 토지소유권 확인 소송을 냈다. 홍릉(명성왕후 묘)의 경계가 넓어지면서 자신의 땅이 그 안에 편입돼 이를 돌려달라는 것이었다. 정씨는 1, 2심에서 패해 고등법원에 상고했지만 법원은 “묘의 경계 안쪽에 편입된 토지는 당연히 왕실의 소유로 귀속된다”며 기각했다.
당시 창덕궁에 살던 이씨 성의 왕은 순종이었다. 1910년 한일합방으로 대한제국의 황제에서 소송 대상에 불과한 왕으로 ‘강등’된 당시의 처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왕을 상대로 한 소송은 군주제를 벗어나 근대사회로 변하는 모습을 반영하기도 한다.
●부첩(夫妾) 관계는 자유로워
A(여)씨와 같이 살던 B씨는 1912년 A씨가 자신의 첩이라는 사실을 인정해달라며 법원에 부부동거 청구소송을 냈다. A씨는 B씨의 소실로 살며 딸을 낳아 기르기까지 했지만 B씨의 잦은 구타로 결국 가출했다. 고등법원은 “부첩 관계의 발생ㆍ소멸은 반드시 엄숙하고 정중한 절차가 필요하지 않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이 멀면 항소 기한 길어
주소지에서 법원까지 거리에 따라 항소 기한이 다르다고 규정한 조항도 눈에 띈다. 당시 법원은 주소지에서 법원까지 거리가 8리면 항소기한을 1일, 16리면 2일을 연장해줬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것을 고려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이 규정을 잘못 이해해 항소하지 못한 어처구니 없는 사례도 있었다. 이모씨는 1914년 외상 값 청구소송을 냈다가 패소하자 항소했지만 법원은 항소 기한이 하루 지났다며 각하했다. 이씨는 집에서 법원까지 11리여서 하루 연장됐다고 생각했지만 법률상 계산 기준인 면사무소와 법원의 거리는 7리였기 때문이다.
최영윤 기자 daln6p@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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