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라는 헤밍웨이의 소설 제목처럼 150억 년 우주 역사에 비해 아주 짧은 역사를 가진 인간의 눈으로 보면 서쪽으로 진 태양은 이튿날 동쪽 하늘에서 다시 떠오른다. 그런데 태양계의 나이가 50억 년 정도이고 보면 태양의 나이보다 두 배나 되는 100억 년의 시간 동안에는 떠오를 태양이 애초에 없었던 셈이다.
게다가 태양도 앞으로 50억 년 정도 더 빛을 발하면 적색거성 단계를 거쳐 하늘에서 아주 사라진다고 한다. 이처럼 태양을 포함해서 우리가 밤하늘에서 영원히 반짝이는 줄로 알았던 별들도 태어나고 죽는다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무얼까 궁금해진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자연에서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구분해 보는 것으로 '자연과학의 세계'라는 문과생을 위한 교양과목 첫 시간을 시작한다.
● 우주 에너지의 총량은 불변
우리 몸만 해도 일년 사이에 자기 체중에 해당하는 원자들이 교체된다. 하루에만도 200그램 정도의 원자가 교체되는 셈이니 그야말로 일일신 우일신(日日新 又日新)이다. 우리나라 인구도 국민총생산도, 우리 국민이 사용하는 자동차나 컴퓨터 수도 변한다. 유엔 회원국 수도 변하고, 믿거나 말거나 북한이 가지고 있다고 내세우는 핵폭탄 수도 변한다.
이철럼 우리 주위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거의 없다면 우주 전체적으로는 어떨까 궁금해진다. 팽창하는 우주는 나이도 크기도 증가한다. 그 과정에서 별과 은하의 수도 변하고, 별의 내부에서 수소가 헬륨으로, 또 헬륨이 탄소, 산소, 철 등 무거운 원소로 바뀌면서 우주의 원자 수도, 원소의 조성도 계속 변하고 있다.
그런데 과학의 눈으로 볼 때 우주 역사를 통해 변하지 않는다고 믿어지는 기본적인 값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광속이고 다른 하나는 플랑크상수이다. 벌써 거의 30년 전이지만 시카고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박사후 연구원으로 MIT 생물학과에 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물리학과 어느 연구실 앞을 지나다가 게시판에 붙은 글의 제목에 끌려 한참을 서서 글을 읽었던 적이 있다. 자연의 기본상수 중 하나인 플랑크상수의 값이 150억 년 전 우주 초기에도 지금 값과 거의 같았다는 증거가 포착되었다는 것이었다.
빛 입자의 에너지 크기를 결정하는 플랑크상수는 광속, 만유인력상수, 전자의 전하 등과 함께 조물주가 우주 역사 초기에 정해 놓은 기본적인 값들의 하나이다. 현대 과학은 이처럼 기본적인 몇 가지 물리적 상수들을 기초로 현재 뿐 아니라 초기 우주의 상황까지도 상세히 서술할 수 있게 되었다.
우주에서 변하지 않는 것으로 믿어지는 또 하나의 중요한 양은 우주 에너지의 총량이다. 낙하하는 물의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꾸어 수력발전을 하듯 에너지는 다른 종류로 변환될 수는 있지만 우주의 전체 에너지는 불변이라는 말이다.
어느 가정이나 나라의 부가 변하는 것을 생각하면 우주의 별과 은하의 수, 원자의 수, 생명체의 수는 변해도 에너지 총량이 불변이라는 것은 그렇게 당연히 받아들일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 과학공부는 감사의 마음 기르기
아무튼 불변하는 우주의 총 에너지와 몇 개의 기본적인 물리 상수들을 가지고 우주가 진화하면서 태양과 지구가 생겨나고, 급기야는 지구상에 생명이 태어나고 발전한 경위를 생각하면 마치 조물주가 일정한 양의 에너지와 몇 가지 자연의 법칙을 주고 천년을 하루 같이 기다리면서 이러한 법칙에 따라 일어나는 변화들을 통해 생명이 태어나기를 지켜 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면 자연을 연구하고 과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우주적으로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구분하고, 변화를 동반하는 다양한 현상들 속에서 어떻게 불변의 원리들이 살아 숨쉬고 있나를 꿰뚫어 보는 눈과 이를 즐기며 감사하는 마음을 기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김희준ㆍ서울대 화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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