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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굿바이 고이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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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굿바이 고이즈미

입력
2006.08.17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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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8월15일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했다. 그의 참배에 대한 세계 언론의 비판은 날카롭다. '동아시아에서 자신을 점점 더 고립시키는 도발행위' '전쟁 범죄를 미화하면서 상대를 조롱하는 제스처'라는 등의 '진지한 비판'도 있으나, '퇴임 한 달을 앞둔 마지막 퍼포먼스' '극우를 상대로 한 마지막 흥행' 등 논평할 가치가 없다는 식의 반응도 있다.

고이즈미는 2001년 총리가 된 이래 한국 중국 등 전쟁 피해국들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해마다 야스쿠니를 참배해 왔다. 금년엔 더 도발적으로 8월15일을 참배일로 정했는데, 9월에 있을 퇴진을 앞두고 '주변국의 압력에 굴하지 않는 강한 지도자'라는 인상을 남기려 했다는 분석이다.

● 시대 역행하는 '바보들의 행진'

피해국의 입장에서 그를 볼 때 분노를 금할 수 없지만, 해마다 정색을 하고 대응하기에는 정치 쇼의 수준이 너무 낮다.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가 일본의 극우세력을 만족시킬 수는 있겠지만 양식을 가진 세계인들의 눈에는 시대를 역행하는 '바보들의 행진'으로 보일 뿐이다.

문제는 그 '바보'가 이름없는 한 시민이 아니라 일본의 총리라는데 있다. 그는 2차대전을 일으킨 일본의 잘못을 반성하는 대신 전범들을 순국영령으로 합사한 신사에 참배함으로써 전쟁 피해국인 이웃나라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그리고 그 빗나간 애국심으로 일본과 일본인을 욕보이고 있다.

지난 6년간 한일, 중일 관계는 연례행사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둘러싼 갈등을 겪었다. 한국과 중국에서 격렬한 반일 시위가 벌어지고, 한중일 3국은 과거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국력과 시간을 낭비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그 비생산적이고 우둔한 싸움을 해마다 걸어왔다. 한중일 관계는 과거가 발목을 잡아 한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고이즈미는 일본에서는 이례적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며 6년이나 장수했지만, 세계에 비친 그의 이미지는 유감스럽게도 야스쿠니와 연결돼 있다. 일본의 전통의상을 입고 팔자걸음을 걸으며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그의 비장한 표정은 참배 자체에 대한 분노에도 불구하고 희극적인 데가 있었다.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면서 그것을 '결단'이라고 믿는 우둔함, 21세기에 군국주의의 상징에 참배하려고 안달하는 경제대국 일본 총리의 비장한 얼굴은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연상케 했다.

그런 모습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와 동작을 흉내내며 부시 미국 대통령을 즐겁게 하는 고이즈미, 열심히 빗질을 하며 '사자머리' 스타일을 가꾸는 고이즈미의 모습과 함께 희극적인 인상을 강화했다.

일본 우익단체의 조직원인 65세의 남자는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참배를 비난했던 가토 고이치 전 자민당 간사장의 집과 사무실에 불을 지른 후 현장 부근에서 할복자살을 기도했다. 한 시민을 자극하여 방화하고 할복하게 한 것은 고이즈미의 책임이다. 그는 시대착오적인 선택으로 이웃나라들과 갈등을 일으킬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 후임 총리 역사인식 달라지기를

9월 자민당 총재로 선출되어 총리 직에 오를 것이 확실한 아베 신조 관방장관은 야스쿠니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 야스쿠니에 전쟁 희생자들과 전범들을 합사하는 것은 잔인한 짓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한국인 희생자 2만명 뿐 아니라 일본인 희생자들도 결국은 전쟁을 일으킨 전범들의 잘못된 판단에 의한 피해자들이다. 태평양전쟁의 주범인 A급 전범을 순국영령으로 피해자들과 합사한 것은 일본이 정신적으로 군국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다.

한 달 후 고이즈미에게 "굿바이 고이즈미"라고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러나 후임 총리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총리 교체의 의미가 없다. 그런 점에서 고이즈미 식의 역사인식을 떠나보내는 '굿바이 고이즈미'가 돼야 한다.

장명수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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