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에게 노란 해바라기 그림은 그의 자화상이었다. 태양의 빛을 좇아 걸어온 인생. 그는 태양과 생명에 대한 찬가를 강렬한 노랑의 해바라기에 담아 그려냈다. 고흐에게 노랑은 생명의 색이었고, 노란 해바라기는 생명의 꽃이었다.
높고 깊은 땅 강원 태백의 한 산자락이 고흐가 사랑했던 그 눈부신 노랑으로 뒤덮였다. 백두대간에서 낙동정맥을 가르는 삼수령 아래. 올려다 본 구봉산의 아홉 봉우리가 아홉 마리의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라고 이름 지어진 구와우 마을에 이제 막 해바라기 만발한 태백 고원자생식물원이 있다.
해바라기 축제는 작년에 이어 올해가 두번째다. 영화 ‘해바라기’속 소피아 로렌이 커다란 눈망울 글썽이던 우크라이나의 광활한 해바라기밭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구봉산 자락이 지금 노란 물결로 크게 출렁이고 있다.
전체 12만 평 되는 식물원의 해바라기꽃밭은 아래쪽의 2만평과 위쪽의 3만평 군락 등 2곳. 식물원 입구에서 처음 마중 나온 꽃은 코스모스다. 해바라기를 꼭 보지 못하게 되더라도 위안을 줄만큼 화사하다. 그 흔한 들꽃도 이리 군락을 이루니 느낌이 새롭다. 식물원을 한바퀴 둘러보는 관람로로 접어드니 눈앞에 그토록 기대했던 해바라기밭이 펼쳐졌다. 해바라기밭 일부가 움푹 패였다. 꽃대 대신해 서있는 ‘속상한 소리’라는 입간판이 시선을 붙들었다. ‘긴 장마와 센 바람으로 어느날 자식 같은 놈들이 누워버렸습니다. 제가 관리를 더 잘했어야 했는데…. 관람객 여러분께 죄송한 말씀 올립니다.’ 사과문을 내 건 주인의 마음이 곱다.
길은 해바라기 꽃밭을 잠시 벗어나 해바라기를 닮은 천인국 꽃밭을 지나 잣나무숲으로 안내한다. 한여름 꽃구경이라 뙤약볕 고생을 각오했는데 예상치 못한 짙은 숲그늘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숲길은 호젓했고 부드러웠으며 시원했다.
숲을 빠져나오자 해바라기밭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원두막 모양의 망루가 서있다. 망루에 올랐다. 노란 물결이 출렁출렁. 감동이 덩어리째 몰려온다. 덩치가 큰 꽃이 큰 군락을 이뤄 성기고 억센 느낌이려니 했는데 눈앞에 펼쳐진 노랑의 일렁임은 의외로 살갑고 부드러웠다. 거칠지 않은 노랑의 바다는 잔잔했고 평화로웠다.
아래쪽 해바라기밭을 지나 관람로는 언덕 위로 향한다. 숨이 조금씩 가빠진다. 아직은 열하(熱夏)의 태양. 햇볕이 무겁게 목덜미 위로 떨어진다. 코스모스 구릉과 2개의 조각작품을 지나니 아래에서 보던 해바라기밭 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노란 물결이 펼쳐진다. 아래의 해바라기밭이 2만평 크기에 평평한 벌판이라면 이곳은 3만평으로 더욱 크고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굴곡을 이루고 있어 눈맛이 빼어나다.
해바라기밭 사이로 굽어진 흙길을 따라 양산을 든 중년의 부부, 짧은 옷에 두 손을 꼭 잡은 젊은 연인들, 아장아장 걸음의 아이와 함께한 가족들이 드문드문 지나간다. 눈부신 노란 생명의 길, 해바라기 꽃길을 걷는 사람들. 이 길 위에 서면 사람도 풍경이 된다.
이성원 기자 sungwon@hk.co.kr
■ 이무기가 몸부림쳤던 굽이진 물길… 태백 '검룡소'
해바라기축제가 열리는 태백고원자생식물원 바로 위가 삼수령. 태백시에서 임계 강릉 방향으로 35번 국도를 타고 가다 만나는 고개다. 이곳에 내린 빗방울은 어디로 흘러내리느냐에 따라 한강물이 되고 낙동강이 되고, 동해로 스며드는 오십천이 된다.
고개 꼭대기 왼쪽으로 난 콘크리트 포장길을 오르면 매봉산이다. 산 정상의 완만한 경사면은 거대한 초록의 설치예술 작품. 전국에서 가장 크다는 광활한 고랭지 채소밭이다. 검푸르게 익어가는 배추가 드넓은 밭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고, 산 능선 위에는 5기의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휘휘 파란 하늘에 바람을 그리며 이국적인 풍광을 만들어낸다.
삼수령을 넘어 임계 방향으로 가다 만나는 창죽동 금대봉골의 검룡소. 한강의 발원지다. 주차장에서 1.3km 되는 길을 약 15분 걸어야 한다. 물길과 나란히 이어지는 짙은 초록의 숲터널. 길은 걸으면 걸을수록 시원해진다. 검룡소는 단지 이곳이 한강의 시원이라는 의미를 찾지 않더라도 그 모습이 진한 감동을 준다. 이무기가 몸부림치고 올라간 흔적이라는 굽이진 물길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이끼 낀 바위 사이에 난 힘찬 물길을 콸콸 쏟아져 내려온다. 사철 수온 9도의 물을 하루 2,000톤씩 뿜는다는 검룡소다.
태백시내에는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가 있다. 이 황지에서 흘러내려간 물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 장성과 철암 사이의 구문소다. 물이란 자고로 산을 만나고 바위를 만나면 돌아가야 하는 법이거늘 이 물줄기는 바위에 구멍을 뚫고 물길을 낸 뒤 큰 소를 만들었다. 황지에서 내려온 물줄기가 오랜 기간 석회암 바위를 녹여내 구멍을 낸 것이다. 구문소 주변의 바위는 5억 년의 지구 역사를 담고 있다. 삼엽충, 두족류 등 다양한 화석이 발견되는 곳이다. 우리나라 고생대 표층을 연구 관찰할 수 있는 귀중한 장소라고 한다.
태백 화방재에서 만항재를 넘어 정선 고한읍으로 가는 길은 한여름 더위를 피하는 드라이브길로 제격이다. 만항재(1,313m)는 차로 넘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로 태백 시내보다도 기온이 6, 7도 정도 낮아 시원하다. 고갯마루에 벤치 등 쉼터가 있다.
태백산 당골광장 옆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인 석탄박물관이 있다. 다이아몬드부터 수백 가지의 각종 광물이 전시돼 있고 탄광의 역사와 광부들의 생활사 등을 볼 수 있다.
태백=글ㆍ사진 이성원기자
■ 여행수첩/ 태백 해바라기 축제 外
▲ 태백 고원자생식물원(www.guwow.co.kr)의 해바라기꽃이 만개한 것은 이달 초부터다. 해바라기 축제는 이달 말까지지만 식물원측은 내달 10일까지는 꽃이 만발할 것으로 예상한다. 입장료는 성인 3,000원. 어린이 2,000원. 식물원 관람로를 따라 한바퀴 둘러보는 데 1시간 30분~2시간 가량 걸린다.
식물원에서는 해바라기를 이용한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가장 인기 있는 것은 해바라기 산야초 비빔밥. 강원랜드 호텔 주방장이 일주일에 거쳐 비법을 전수한 음식이다. 더덕 당귀 곰취 멍이 메밀 새싹에 밥과 고추장, 해바라기씨 기름을 넣고 비비면 매콤달콤한 비빔밤이 완성된다. 밥이 진짜 박으로 만든 바가지에 따로 나와 이색적이다. 15년 묵은 된장으로 끓여낸 장국도 시원하다. 7,000원. 산야초전(5,000원), 메밀전(5,000원) 등도 맛볼 수 있다.
▲ 정선에서 태백 시내로 접어들기 직전 왼쪽으로 검룡소 이정표를 따라 35번 국도를 타고 임계, 강릉 가는 방향으로 꺾어 든다. 국도지만 길 초입이 동네길처럼 좁아 길을 잘못 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마을 어귀를 지나면 길은 다시 왕복 2차로로 넓어진다. 삼수령 고개를 오르다가 오른쪽 ‘태백 해바라기 축제’ 이정표를 따라 진입하면 고원자생식물원 주차장이다. (033)553-9707
▲ 여행사의 패키지를 이용하면 장거리 운전의 수고를 덜 수 있다. 승우여행사(www.swtour.co.kr)는 고원자생식물원의 해바라기 축제장을 돌아보고 함백산 만항재에 올라 야생화를 감상하는 하루 일정의 패키지 상품을 출시했다. 토, 일요일 출발한다. 참가비 3만3,000원. (02)720-8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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