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4기 헌법재판소를 이끌 소장이 지명되고 재판관 5명도 새롭게 내정됨에 따라 헌재의 구성과 결정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전효숙 소장 후보자는 1988년 헌재 출범 후 첫 여성 소장이 되는 데다 재판관에서 소장으로 내부 발탁되는 첫번째 경우다.
연장자나 고시ㆍ사시 선임 기수가 소장을 맡아온 관례를 깬 첫 사례이기도 하다. 그의 지명 자체로 헌재의 변화가 시작됐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여기에 사시 15회~19회의 검찰과 법원 출신 5명이 새롭게 재판관으로 합류하게 되면서 헌재는 한층 젊어진 채로 국민들에게 다가설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전 소장 후보자의 발탁을 제외하고는 고위 법관이 검찰 간부 출신 재판관이 빠져나간 자리를 다시 법관들과 검찰 간부가 그대로 이어받는 내용이어서 헌재의 체질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비판론도 나오고 있다.
‘운 좋은’ 노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은 헌재 재판관에 관한한 ‘운 좋은’임명권자이다. 이번 인사로 모두 8명의 재판관이 바뀌게 된다. 김대중 정부에서 임명된 주선회 재판관도 내년 3월 퇴임해 그의 임기 중 재판관 전원을 새로 임명하게 된다. 일련의 재판관 교체를 통해 노 대통령은 헌재에서 정권의 지지 기반을 어느 정도 마련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조대현 현 재판관, 전 소장 후보자에 이어 김종대 창원지법원장이 재판관에 내정됨으로써 노대통령의 사시 17회 동기생이 3명이나 헌재에 포진하게 됐다. 이들의 결정 성향이 반드시 현정부 쪽으로 기울 것이라고는 단언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노 정부에 대한 알레르기적 거부 반응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만큼 노 정부가 안게 될 부담은 줄어드는 셈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코드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출신으로 소수자의 권익 보호에 앞장 서온 조용환(사시24) 변호사를 두고 막판까지 고심했으나 끝내 낙점하지 못한 것이 현 정부의 고민을 함축하고 있다. 전 소장 후보자에 대한 보수층의 반대가 거센 마당에 개혁 성향의 재야 변호사를 재판관으로 추천할 경우 너무 큰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분석된다.
보수에서 중도로 한발짝 옮겨온 헌재
새 헌재는 3기에 비해 보수적 색채가 다소 엷어졌다고 할 수 있다. 보수파가 많이 빠져나간 대신 중도파들의 입지가 넓어졌다는 분석이다. 대법원장 추천을 받은 김종대, 민형기(16) 내정자와 여ㆍ야 합의로 추천받은 목영준(19회) 내정자는 합리적 중도파로 분류된다.
김희옥(18회) 법무부 차관도 보수보다는 중도에 가깝다는 평이다. 이동흡(15회) 내정자는 한나라당이 추천한 탓에 보수적 입장을 대변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지만 지금까지의 판결만 보면 중도적 입장에 가깝다는 반론도 나온다. 여기에 전 소장 후보자와 조대현(17회) 재판관은 개혁, 주선회(10회) 재판관은 보수로 분류되는 게 일반적 평이다. 이런 성향 분포로 볼 때 4기 헌재는 ‘개혁:중도:보수= 2:5:2’로 나누는 분석이 우세하다.
그러나 재판관의 성향은 정치인들과의 친소 또는 몇 건의 판결로 좌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 후보자(개혁), 주 재판관(보수)을 제외한 나머지 재판관을 중도로 보는 ‘1:7:1’로 분류하는 시각도 있다. 극단적으로 노 대통령과의 친소만으로 성향을 따져 전 후보자, 김종대 내정자, 조대현 재판관을 ‘개혁’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정부, 위헌 결정 저지선 확보에 유리
중도 성향의 4기 헌재는 참여정부로선 개혁법안 등의 위헌결정 저지선 확보에 유리해진 측면이 있다. 사실 참여정부는 보수적 성향의 3기 헌재에서 간신히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은 면했지만 신행정수도 이전특별법 위헌 결정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4기 헌재에서도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주요쟁점이나 개혁법안에 대한 위헌 소송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개정 사립학교법의 위헌여부에 대한 심판이 내려질 예정이고, 종합부동산세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헌재의 주요 결정은 재판관 9명 중 6명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최소 4명의 지지를 확보하면 위헌을 막아낼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급격한 변화는 기대 어려워
일부에선 4기 헌재에서 국가보안법 등 시대에 뒤진 법들에 대한 위헌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그러나 헌재가 민감한 사안에 대해 과거와 확연히 대비되는 진보적 결정을 내놓을지는 미지수이다.
지금까지 역대 재판관들의 경우 보수ㆍ진보 성향 분류가 개별 사건에서는 딱 들어맞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더구나 개혁 성향의 전 소장 후보자도 9명 중 한 표를 행사할 뿐이고 다른 재판관의 결정에 영향력을 미칠 수도 없다. 따라서 4기 헌재는 중도 성향의 재판관 5~7명이 각각의 사안에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위헌과 합헌의 시소 게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 변호사는 “헌재 결정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법 논리에 판단의 근거를 두기 때문에 재판관 몇 명이 바뀌었다고 과거 결정이 쉽게 뒤집어지는 일은 드물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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