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16일 전국법원장회의를 거쳐 법조비리 근절 방안을 내놓았다. 대법원은 ‘뼈를 깎는 자성(自省)의 산물’임을 호소했지만 그 실효성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는 시각이 많다. 1997~98년 의정부 법조비리, 99년 대전 법조비리 등 과거 법관들의 비리가 터져 나올 때마다 해법을 제시했으나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근본적인 수술까지 나가지 못했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법원이 발표한 방안에 따르면 사건을 맡은 법관과 친분이 있는 변호사가 선임돼 재판 불신의 우려가 있는 경우 재판장이 사건 재배당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친분의 기준이 모호하고 재판장이 후배 법관의 사건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설지 의문이다.
대법원은 비리 법관을 재판업무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비리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면 해당 법관이 재판을 맡지 못하도록 연구법관으로 발령 낸다는 방침이다. 비리 법관이 스스로 옷을 벗어 법원의 징계를 모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식 형사절차가 개시될 때까지 해당 법관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을 계획이다. 또 변호사 등록 심사 시 대한변호사협회가 자료를 요청해오면 비리 법관에 대한 감찰 자료를 제공하기로 했다.
일반인들의 법관 사무실 출입도 통제된다. 지금까지는 법관 사무실에 들어갈 때 검사 변호사 등 사건 관계자들만 대장에 출입 사실을 기록했는데 이를 일반인들에게까지 확대한다는 것이다. 조관행 전 고등법원 부장판사의 구속영장에는 브로커 김홍수씨가 조씨 사무실을 수시로 드나들며 돈을 준 것으로 돼 있다.
대법원은 법관 감찰 기능도 대폭 강화한다고 밝혔다. 감찰 인력을 보강하고 외부인사가 법관 징계절차에 참여하도록 했다. 그러나 국회의 탄핵이나 금고(禁錮) 이상의 형을 선고 받지 않는 한 법관을 파면할 수 없도록 헌법에 규정돼 있는 만큼 비리 사실이 드러나더라도 사실상 그만두게 할 방법이 없다. 법원이 비리 법관에게 내릴 수 있는 최대 징계는 ‘정직 1년’이 고작이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법관 임관 후 10년마다 이뤄지는 재임용 심사를 적극 활용해 비리 판사를 걸러내겠다는 복안도 제시했다. 이 때에는 국회의 탄핵이나 금고 이상의 선고 없이 ‘판사로서 품위를 유지하는 게 현저히 곤란한 경우’만으로 법관을 재임용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임관 11년째 비리를 저지른 법관을 그만두게 하기 위해서는 다음 재임용 심사 때인 임관 20년째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폐단이 있다.
법관 퇴임 후 2년간 최종 근무지의 형사소송을 수임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 등 국회에 계류 중인 법률 개정안에 대해서는 “국회에서 판단할 문제”라는 취지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대법원의 방안에 대해 법원 밖의 시각은 우호적이지 않다. 수동적인 대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야의 한 변호사는 “과거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 법관의 신분을 법으로 보장했으나 오히려 이것이 법관의 비리 방패막이가 되고 있다”며 “법 테두리 안에서만 대책을 강구할 것이 아니라 법원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국회에 법 개정을 요청하거나 적어도 법 개정에 대한 수용 의사를 밝혔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변호사도 “법관 재임용 심사 주기를 단축하거나 비리 법관의 징계 수위를 높이고 변호사 개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등 보다 강력한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 한 언제든지 법관의 비리가 또 터져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지성 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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