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영화 '중앙역'의 한 주인공은 역 대합실에 책상을 놓고 앉아 편지를 대필해 주는 일로 먹고 사는 중년여자다. 척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흘러가고 흘러오는 중앙역 대합실에서 그녀의 손님은 먼 길을 떠나는 노동자거나 공장 생활에 지친 여공, 헐벗은 자식들을 홀로 건사해야 하는 젊은 어머니 같은 사람들이다.
"감옥에 가더라도 기억하세요. 나도 당신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문맹인 그들은 절절한 사연으로 먹먹한 가슴 속을 고해하듯 그녀에게 풀어놓는다. 그리고 편지 대필의 보수와 우표 값을 건네고 머뭇거리며 떠난다. 그녀의 집 책상 서랍에는 부치지 않은 편지들이 쌓여 있다. 우표 값을 떼어 먹으려 그런 것이다. 그녀는 '남편, 자식, 강아지 하나도 안 키우는' 사람이다.
그런 직업도 괜찮겠다. 역전이나 공원 나무 아래서 초상화가 옆에 책상을 놓고, '지금 당장'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낼 사람을 기다리는 것. 한국의 문맹률은 아주 낮으니까 글을 몰라 편지를 못 쓰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마음을 못 내도록 바빴거나,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편지를 못했을 것이다. 내 손님들과 나는 좀 오래 얘기를 나눠야만 할 것 같다.
시인 황인숙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