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혈액형을 모르는 캐나다인 영어강사 데이비드 디온씨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한 학생이 대뜸 혈액형을 물어 당황한 경험이 있다. 수혈이 필요한 위급한 환자가 있는 걸로 착각했던 것이다. 개그맨 P씨는 마음에 드는 여성이 혈액형을 물으면 O형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B형 남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의식해서다. 실제 한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한 여성들의 상당수는 특정 혈액형(주로 B형)은 제외시켜 달라고 주문한다고 한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혈액형부터 묻고, 혈액형을 상대의 성격을 파악하는 중요한 정보로 삼는가 하면, ‘혈액형별 ○○법’ 등 마케팅에까지 혈액형이 활용되는 기현상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걸까. 20일 밤 11시5분에 방송하는 SBS스페셜 ‘혈액형의 진실’은 가히 신드롬이라 할 만한 혈액형 집착 현상의 원인과 혈액형에 관한 잘못된 편견을 조목조목 짚어본다.
유독 한국과 일본에서 혈액형에 대한 관심이 높은 이유로는 혈연과 대인관계를 중시하는 전통을 들 수 있다. 타인의 고향, 출신학교 등에 관심이 많은 우리 정서상 혈액형도 하나의 정보가 될 수 있지만, 혈액형을 성격과 연관 짓는 것은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다.
제작진은 네 가지 혈액형 당 5명씩 20명에게 혈액형별 성격 특성 조사라고 속이고, 실제로는 같은 내용의 설문을 제시해 자신의 성격과 일치하는지 물어보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응답자들은 혈액형과 상관없이 설문의 70% 정도를 자신의 성격과 일치한다고 답했다. 혈액형 성격학의 확산에는 ‘버넘 효과(Barnum effect)’, 즉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성격 특성을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제작진은 이 같은 실험과 국내외 혈액형 전문가 인터뷰 등을 토대로 ‘혈액형 성격학’은 근거가 희박한 유사과학으로 치장된 상업주의의 산물이라고 결론 짓는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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