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규와 김지수가 주연한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의 원래 제목은 ‘미열’이었다. 시나리오 내용이 다소 바뀌기도 했지만, 제목이 너무 뜨뜻미지근하고 짧아 ‘명찰’을 바꿔 달았다.
김승우 장진영 주연의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대책 없이 빠져드는 독특한 연애담’을 장르로 내세우고 있다. 구태의연한 장르 규정으로 홍보에 나서서는 멜로 영화 홍수를 헤쳐나갈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튀어야 살아 남는다’. 요즘 영화 마케팅의 지상과제다. 대중의 눈을 단번에 낚아채는 것은 늘 영화 마케팅의 제1 목표였지만 최근 들어 한층 치열해졌다. 극장이 차고 넘칠 정도로 영화가 많아서다. 9월부터 연말까지 개봉 예정인 작품은 외화를 포함해 114편. 매주 평균 6.5편의 영화가 쏟아진다. ‘잘 만들기’보다 ‘잘 알리기’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마케팅 전쟁의 치열함은 영화 작명에서부터 감지된다. ‘괴물’ ‘한반도’ ‘태풍’ 등 대중의 머리를 쉬 파고 드는 짧고 굵직한 제목은 소수 블록버스터의 전용물이 된 지 오래다. 물량공세를 내세울 수 없는 영화들은 긴 영화 제목으로 차별화에 나선다.
관객들 눈엔 고만고만하게 보이는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의 경우 이런 움직임이 더욱 두드러진다. 현재 제작중인 국내영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계십니까?’ ‘햇살 속으로 래프팅 하고 싶다’가 대표적이다.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도 밋밋하면서 낡아보이는 ‘보고 싶은 얼굴’을 개명한 결과물이다.
외화도 예외는 아니다. ‘겁나는 여친의 완벽한 비밀’ ‘낯선 사람에게서 전화가 올 때’ 등도 제목의 장문화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영화홍보사 올댓시네마의 이수진 대리는 “제목이 길면 일단 특이해보이고, 영화에 대한 설명을 많이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독특한 장르 내세워라
독특한 장르 규정도 잇따르고 있다. 고현정의 첫 영화 출연작으로 화제를 모은 ‘해변의 여인’은 ‘동상이몽 로맨스’를, 구미호 가족은 ‘엽기 뮤지컬 코미디’를 표방한다. 1월 개봉한 ‘싸움의 기술’은 ‘실용액션’라는 간판을 달았다. ‘족보’에도 없는 엉터리 장르 구분이지만 관객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효과 만점이라는 것. 홍보사 에이엠시네마의 명수미 실장은 “멜로라고 단순 규정하면 사람들이 볼까 말까 하는 시대다. 영화의 색깔을 명확히 알리려 독특한 장르를 내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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