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할아버지의 큰 뜻을 기리는 현장을 보니 가슴이 벅찹니다.” 구한말 의병대장 허위 선생의 장손자인 허프로코피(72ㆍ러시아 모스크바 거주)씨는 15일 독립기념관 전시관에 소장된 할아버지의 유품과 어록비를 보면서 연신 눈가를 훔쳤다.
허씨와 함께 전시관을 둘러보는 다른 독립유공자들의 후손 16명도 다르진 않았다. 1907년 고종의 밀명을 받고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파견됐던 이위종 선생, 상하이(上海)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냈던 이상룡 선생 등 역사 교과서에서 등장하는 애국 지사들의 후손들은 독립기념관에 보관된 손 때묻은 선조들의 유품과 기록 앞에서 좀처럼 발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조상의 발자취를 더듬었지만 이들의 얼굴은 쉽게 펴지지 않았다. 선조에 대한 자부심 뒤로 그동안 겪어온 설움의 생채기가 되살아 났기 때문이다. 이들은 러시아에서, 카자흐스탄에서, 소수민족이라는 이유로 핍박과 서러움 속에 한평생을 보내왔다. 어릴 적 아버지가 소련 정부에 의해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는 슬픔을 견뎌야 했고, 고려인 자식이라는 손가락질도 감수해야 했다. 커서는 직장에서는 승진 차별을 겪기도 했다.
힘들 때마다 선조가 조국을 위해 몸바친 독립운동가의 핏줄이라는 자부심으로 버텼지만 평생을 따라다닌 고단한 현실은 이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지 못했다. 그렇기에 한국을 쉽게 조국이라고 부를 수가 없었다.
정부가 이들을 초청한 일은 늦었지만 박수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한번의 초청 행사로 이국 땅에서 모진 세월을 버틴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는 없다. “우리는 한국에서 그저 손님일 뿐이라는 사실이 서글퍼집니다.” 한 후손의 한마디는 독립유공자 초청 행사가 광복절의 의례적인 손님맞이로 그쳐서는 안된다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천안=이준호 기자 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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