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사관 앞에서 만난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회원 김경숙(59)씨는 소나기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김씨는 “하늘도 억울한 우리 마음을 알고 있는지 비를 뿌려준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30년 가까이 광복절이면 어김없이 소복을 입고 유족회 행사에 참가해 왔다. “지난해까지는 떡과 음식도 준비해 제를 올렸지만 올해는 돈이 부족해 그마저도 못했다”고 섭섭해 했다.
김씨 삼촌은 20세에 징용돼 태평양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고 집안은 풍비박산했다. 시골(경북 경주)에서 힘들게 농사짓던 할아버지는 화병으로 숨지고 할머니는 매일 밭에 나가 숨 죽여 울었다.
김씨 가족에게 광복절은 떠난 삼촌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으로 가득찬 날이었다. 김씨는 “일제 피해자를 기리고 그 뜻을 되새겨야 하는 광복절이 자꾸 다른 쪽(정치)으로 이용 당하는 것 같다”며 “젊은 세대가 광복절의 참 뜻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걱정”이라고 혀를 찼다.
현 정부에 대한 안타까움도 이어졌다. 정부가 3월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을 만든다고 할 때만 해도 김씨는 부모님 때부터 30년 넘게 고생한 보람을 얻게 됐다며 한껏 기대했다. 김씨는 그러나 희생자의 직계나 형제까지만 보상을 받도록 제한하려 한다는 얘기를 듣고 “직계나 형제는 대부분 세상을 뜬 상태인데 이들에게만 보상하는 특별법을 만들어 무슨 소용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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