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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세상의 모든 비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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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세상의 모든 비탈

입력
2006.08.15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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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대한민국에서 살고, 가진 게 없고 배운 게 없고 나이가 들었고, 또 여자라면, 먹고 살기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는 취한 머리를 쥐어짜 더듬더듬 들려줬다. KBS에서 방영됐던 다큐멘터리 '세상의 모든 라면박스'는 대략 그러한 내레이션으로 시작되고 맺어진다고 한다.

"실은 나도 다 못 봤어요. 처음 10분, 끝부분 10분만 봤어요." "왜요?" "너무 슬퍼서요. 도저히 못 보겠더라구요." 자기가 본 최고 다큐멘터리라면서, 인터넷 '다시보기'로 꼭 보라고 했다.

'세상의 모든 라면박스'는 달동네에 살면서 폐지를 수집하는 할머니들 이야기란다. 우리 동네에도, 내려갈 때면 쏠린 발이 슬리퍼 앞 트인 데로 삐져 나갈 정도의 급경사 비탈을 오르내리며 폐지를 모아 살아가는 할머니들이 있다.

당신 몸피만한 폐지를 끌고 어제도 오늘도 비탈을 오르시는 할머니들. 전철 선반 위의 신문을 걷어 모으는 할머니들은 또 왜 그리 키가 작으신지. 그 들린 발꿈치와 앙버티는 장딴지의 바르르 떨리는 비탈들.

그건 정말 특수한 경우일 뿐이야, 라는 자기정당화로 눈을 감아도 소용없다. 특수하든 그렇지 않든, 극빈은 관념이 아니라 삶이므로.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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