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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우린 그들의 자화상을 알고 있다

입력
2006.08.15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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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ㆍ15 특별 사면ㆍ복권에서 재벌총수급 인사들은 모두 제외되자 재계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말로는 "정부가 기업 기 살리기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 것 같아 투자활성화에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고 아쉬움을 표시하는 정도지만 행간엔 '한 번 잘 해 보쇼'라는 감정이 짙게 배어 있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뉴딜'제안을 앞세워 재계 껴안기 행보에 적극 나서기에 여권의 태도에 변화가 있는 줄 알았더니 오히려 뒤통수를 맞았다는 푸념도 터져 나온다.

● 염치없는 사면·출총제폐지 요구

불만과 낙담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출자총액제한제도만 폐지되면 당장 14조원 규모의 투자가 줄을 이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는데도, 정부는 오히려 재벌의 순환출자 폐해를 지적하며 지배구조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고 있다.

황금주 도입 등 경영권 방어장치를 마련해주는 줄 알았더니 그나마 애써 이룩한 그룹지배의 고리를 끊겠다는 것 아닌가. 사정이 이런데 어느 기업이 투자와 고용을 늘리고 하도급관행을 개선하며 취약계층 지원에 나서겠냐는 냉소적 표정이 역력하다.

정부와 여당의 정책난맥상과 시장불신은 새삼 거론할 게 못 된다. 그러나 재계가 모든 책임을 외부로 돌리며 마냥 투정을 부릴 정당성을 가진지는 의문이다. 잠시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자.

재벌의 경제적 집중이 사회문제로 비화된 1980년대 말 도입된 출총제는 한 차례 기준을 강화하며 10년 동안 기능을 잘 수행하다가 외환위기 때 폐지됐다. 부채비율 축소, 적대적 M&A 허용, 구조조정 압력 등 급변한 환경에 기업들이 적응할 여지를 주기 위해서였다.

2001년 4월 이 제도가 다시 도입된 것은 불과 3년여 만에 순환출자 등을 통한 재벌의 출자고리규모가 10%포인트 가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 결과 소유와 지배의 괴리는 더욱 확대됐고 최근 불거진 거대재벌의 편법 증여 및 상속, 분식회계, 비자금 관행, 내부자거래 등의 씨앗도 그 때 잉태됐다.

재도입된 출총제마저 경영여건 변화와 재벌의 압력에 의해 해마다 예외조항이 추가돼 도처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현행 제도에서도 기업의 투자여력이 11조원을 넘는다는 분석도 있어 출총제에 모든 원죄를 뒤집어 씌우는 것은 볼썽 사납다.

그 재벌은 또 어떻게 성장해왔는가. 총수의 혜안과 대담한 결단, 임직원의 열정과 창의성, 효율적 조직운용 등 선진적 인적ㆍ물적 토대가 핵심 요인임은 두말할 필요없다. 하지만 중대한 함정이 있다. 지난해 안철수 연구소 창립 10주년을 맞아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안철수씨가 한 말을 다시 떠올려보자.

"수조원의 이익을 내는 대기업조차 중소기업의 납품가격을 후려치고 납품기업의 이익이 많이 난다 싶으면 감사까지 하는 횡포가 일상화돼 있다. 빌 게이츠가 와도 성공할 수 없는 나라에서 10년 동안 정상은 보이지 않고 밑은 천길 낭떠러지인 곳에서 버티는 암벽등반가처럼 살았다."

● 지금은 재계가 이니셔티브 쥘 때

이 땅의 대표적 벤처기업을 일군 안씨의 고뇌가 그 정도였다면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에게 '대ㆍ중소기업 상생의 생태계'는 먼 나라의 전설 같은 이야기다.

올해만 해도 고유가와 환율하락으로 수익성이 나빠진 대기업들은 협력업체와 하청업체를 희생양으로 삼거나 글로벌 소싱이란 이름 아래 국내 중소기업을 외면했다. 그러고도 대기업을 대변하는 재계가 참여정부의 경제실정을 질타하는 '민심'에 편승, "우리의 역할을 원하면 먼저 당근을 내놔라"며 상식을 넘는 갖가지 요구를 쏟아내는 것은 참으로 염치없는 짓이다.

한국일보에 칼럼을 게재하는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얼마 전 "한국의 '위대한 민심'은 반감을 최대동력으로 삼아 '공중에 띄웠다가 땅바닥에 떨어뜨리기'게임을 즐긴다"라고 분석했다.

몇 번의 선거에서 극도의 쏠림을 드러낸 이 민심을 '의병적(義兵的)'이라고 규정하는 사람도 만났다. 궁핍한 살림살이의 원인을 정부에서 찾던 민심이 돌연 표변해 재계를 땅바닥에 패대기칠 수 있다는 경고다. 재계가 지혜롭다면 조건없이 투자와 고용의 이니셔티브를 쥐어야 한다. 그래야 숙원도 해결된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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