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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도덕과 도덕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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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도덕과 도덕주의

입력
2006.08.15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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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도덕적이야." 이건 좋은 의미다. "그 사람 도덕주의적이야." 이건 별로 안 좋은 의미다. 누군가를 '도덕적'이라 했을 땐 그 사람 개인의 행실에 국한시켜 하는 말이지만, '도덕주의적'이라 했을 땐 그 사람이 세상을 도덕의 잣대로만 본다는 의미다.

'도덕주의'의 부정적 의미는 크게 보아 세 가지다. 첫째, 사고가 편협하고 경직돼 있다는 의미다. 둘째, 복잡한 세상 이해를 사회과학적으로 하지 않고 도덕이라는 일면만 보는 무지를 드러내고 있다는 의미다. 셋째, 그 어느 쪽이건 이념 공동체내에서 이념적 대의의 실천에 충실하지 않다는 비판의 의미다.

● 도덕주의로 골병 든 한국정치

가급적 도덕주의는 피하되 도덕은 갖는 게 좋다. 그런데 어찌 된 게 우리 사회에선 도덕은 박약하고 폄하되는 반면 도덕주의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도덕은 자신을 향하지만 도덕주의는 남을 향하기 때문이다. 남을 단죄할 땐 도덕주의의 칼을 쓰고, 자신의 처신은 도덕을 초월하는 풍토가 만연돼 있다.

도덕을 초월하다 못해 유린하면서 쓰는 말이 "대의(大義)에 충실하자"거나 "대국적으로 보자"는 말이다. '시대정신'이라는 말도 쓰인다. 도덕은 개인 수준의 사소한 것인 반면 '대의'와 '시대정신'은 세상을 바꾸는 거창한 일이라는 자기암시가 내포돼 있는 용법이다.

도덕을 초월하는 사람들이 도덕적 우월감을 갖는 진기한 현상도 목격된다. 아니 따지고 보면 진기할 것도 없다. 이 경우의 도덕적 우월감은 '대의'와 '시대정신'과 관련된 것으로 개인의 행실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도덕적 우월감 표현의 구호는 "너 감옥 갔다 왔어?"나 "너 투쟁한 적 있어?"다. 물론 누구도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그 우월감은 어떤 식으로건 삐져 나오기 마련이다. 그건 마치 고교 평준화 이전의 K고를 나온 사람이 어떤 식으로건 자신이 K고를 나왔다는 걸 알리기 위해 대화를 그 쪽으로 몰아가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

도덕은 사소한 것인가? 스티븐 룩스는 '마르크스주의와 도덕'이라는 책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망친 건 '도덕' 개념의 부재라고 했다. 물론 그가 '망쳤다'는 말은 쓰지 않았지만, 방향이 그 쪽이란 건 분명하다.

사람들은 이념에 분노하지 않는다. 도덕에 분노한다. 거대한 것에 분노하지 않는다. 사소한 것에 분노한다. 자신을 중심으로 자신과 비교해서 분노한다. 이념이나 정책은 피부에 와 닿지 않기 때문에 분노의 소재론 한계가 있다.

사회과학자들도 도덕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정책과 법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물론이다. 그러나 그 중요한 걸 해낼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정치인과 정치집단이 도덕적 신망을 잃어 '식물화'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된다.

어느 야당 정치인이 '100일 민심대장정'에 올라 서민들과 더불어 동고동락하고 있다. 이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 신문 칼럼이 여러 개 나왔다. 혹자는 '쌩쑈'라고 하겠지만, '쇼라도 보기 좋다'는 사람들이 많다.

독설도 불사하는 전투적 자세로 서민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정책을 펴겠다면서 자신은 재테크로 치부하고 자기 자식은 극성을 부려 일류 교육을 받게 하는 정치인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문제 있는가? 아무런 문제 없다. 법대로 하는 일인데 누가 뭐라고 한단 말인가?

● 파탄 난 도덕 회복해야

그러나 바로 그런 사고방식이 지금 한국정치를 골병 들게 하고 있다. 정책과 법 이전에 '특권 계급' 이미지와 실천이 문제다. 지금 서민들이 염증을 내는 건 이념ㆍ정책ㆍ비전과 관련된 게 아니다.

그들이 분노하는 건 정치와 공공영역의 이권화ㆍ사유화다. 그 목적이 아무리 숭고해도 도덕이 파탄 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도덕주의는 내쫓고 도덕을 불러 들여야 한다. 그럴 뜻이 없더라도 도덕에 목숨 거는 '쇼'라도 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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