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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후손 17명 러·카자흐 등서 고국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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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후손 17명 러·카자흐 등서 고국 찾아

입력
2006.08.15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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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이 지나서야 할아버지께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신 현장을 찾아 뵙다니….”

구한말 의병대장 왕산(旺山) 허위(許蔿) 선생(1854~1908)의 장손자인 허프로코피(72ㆍ러시아 모스크바 거주)씨는 14일 서대문 형무소를 둘러보면서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광복절을 맞아 국가보훈처 초청으로 러시아 카자흐스탄 미국 캐나다 중국 등지에서 한국을 찾은 독립유공자 후손 16명과 함께 이날 국립현충원에 이어 서대문 형무소를 들른 허씨는 말로만 듣던 할아버지의 독립 운동을 되새기는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허위 선생은 1908년 4월 정미의병 당시 ‘서울진공 작전’을 주도했다가 일본군에 체포돼 같은 해 9월 51세의 나이로 서대문 형무소에서 처형됐다.

허씨는 “할아버지는 일본군과 싸우다 잡혀서도 저들을 준엄하게 꾸짖었던 참으로 기개 넘치는 분이셨다”며 “오늘에야 할아버지의 넋을 조금이나마 달래드린 것 같아 감사할 따름”이라고 했다. 허씨 가족은 일제의 핍박에 못 이겨 1915년 만주로 떠났고, 만주에서 다시 연해주로 터전을 옮긴 데 이어 구 소련의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1937년)의 희생자가 돼 중앙아시아로 쫓겨나야 했다. 허씨는 “할아버지 4형제 모두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치셨다”며 “때문에 우리 부모 세대들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수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다행히 66년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뿌리를 내린 덕분에 여느 고려인들과 달리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했다.

허씨의 형제들은 이미 한국에 와 있다. 동생 허게오르기(62)ㆍ허블라디슬라브(55)씨가 한국 정부에 신청한 특별귀화가 지난 달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허씨는 “진작 왔어야 하는 곳인데 이제서야 오게 됐다”며 “발전된 고국에서 동생들까지 만나게 돼 뭐라 말할 수 없이 기쁘다”고 했다.

갈색 머리와 푸른 눈의 에피모바 류드밀라(70ㆍ이위종 선생의 손녀)씨는 “할아버지가 생전에 얼마나 고국 땅을 밟고 싶어했을까 생각하면 그저 죄스러운 마음 뿐”이라며 눈물을 훔쳤다.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고국에서 직접 보고 느낀 소중한 경험담을 털어 놓기도 했다. 기이고르(44ㆍ이상룡 선생의 증손자)씨는 “모스크바에서도 한인들이 매년 광복절 행사를 치르지만 내 핏줄이 과연 무엇인지 실감하기에는 부족했다”며 새삼 고국의 초청에 감사해 했다. 필란스카야 갈리나(43ㆍ김경천 선생 손녀)씨는 “부모님은 내게 한국에 꼭 가봐야 한다고 당부하곤 했다”며 “아직은 낯설지만 할아버지가 태어난 이 땅이 왠지 고향처럼 따스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이들은 15일 61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한 뒤 독립기념관을 찾을 예정이다. 이어 경주ㆍ민속촌 관광, 울산 현대자동차 견학 등을 마치고 19일 출국한다. 국가보훈처는 1995년부터 매년 광복절에 즈음해 해외에 거주하는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초청하고 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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