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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뺏길 수 없었던 '징게 맹갱 외에밋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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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뺏길 수 없었던 '징게 맹갱 외에밋들'이여

입력
2006.08.15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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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일제의 혹독한 수탈로부터 제 땅을 지켜내고자 했던 이름 없는 민초들의 눈물겨운 농부가였다. 타지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던 식민지 농민들의 서러운 유랑기였다.

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의 시청각적 재현을 통해 식민지 조선인의 삶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특별한 전시회가 열린다. 민족문제연구소와 김제시 아리랑문학관은 식민지 시대의 사진과 지도, 유물, 유품, 생활용품 등 원본 사료와 각종 영상ㆍ음향자료, 재현품, 제작설치물 등을 한데 모아 ‘아리랑’의 세계를 압축해 놓은 기획전시회 ‘징게 맹갱 외에밋들’을 18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서울 종로구 중학동 한국일보 갤러리에서 개최한다.

책을 다 읽은 사람에게는 다시 한 번 감동을 재생하는 기회가, 12권의 엄청난 분량에 질려 책장을 펼치지 못한 사람들에겐 책을 손에 잡고픈 용기를 주는 유혹적인 안내가 될 행사다.

전시회의 제목인 ‘징게 맹갱 외에밋들’은 ‘김제ㆍ만경 너른 들’이란 뜻으로 ‘아리랑’의 주무대인 호남평야를 가리키는 이 지역 토속어. 1990~95년 한국일보에 연재됐던 ‘아리랑’은 일제강점기 미곡 수탈이 집중됐던 동진강과 만경강 일대의 곡창지대를 배경으로 해 망국 전야에서 해방에 이르기까지 민족사의 애환을 그린 역사소설이다.

전시회장은 소설의 구성을 따라 4개 섹션으로 구획됐다. 1부는 ‘아, 한반도’, 2부는 ‘민족혼’, 3부는 ‘어둠의 산하’, 4부는 ‘동트는 광야’라는 제목으로 소설 속 내용과 역사적 사실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당대 식민지 조선인들의 척박했던 삶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아리랑’의 원고 분량을 체감해 볼 수 있도록 마련된 2㎙ 높이의 200자 원고지 2만매가 관객과 키를 재보자고 손을 내밀고, 천장에서는 쌀톨이 깔린 바닥을 향해 조정래 선생의 인터뷰 영상을 담은 레이저빔이 나온다.

입구를 지나면 식민지 시대 사진과 농촌지도자를 꿈꿨던 한 청년의 일기, 추억을 담은 졸업앨범, 교과서에 쓴 낙서 등 당대의 다양한 실물자료를 통해 ‘아리랑’의 기본 줄거리를 요약하는 개별 섹션이 펼쳐진다. 1부에서는 소설이 처음 시작하는 김제ㆍ만경평야를 배경으로 군산항 등 여러 수탈기구가 들어서는 모습을 형상화했고, 2부는 수탈이 본격화하면서 농민들이 땅을 잃고 쫓겨나는 과정과 3ㆍ1운동, 청산리 전투 등 항일독립운동을 재현했다.

하와이가 원산지인 센달우드를 당산나무로 꾸며 고향 잃은 설움을 달랬던 하와이 이주민 1세대의 서러운 역사도 전시장에 마련된 당산나무와 돌탑을 통해 되살아난다.

3부는 3ㆍ1운동 이후 일제의 식민지 정책이 문화정책으로 바뀌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대중운동과 노선갈등을 자세히 표현했고, 4부는 일제말 전시체제기의 만주침탈과 친일파의 실상을 독립군의 활발한 활동과 병치, 독립의 서광이 비추는 과정을 조명한다.

각 섹션마다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인 보름이, 송수익, 감골댁, 양치성, 방영근, 하시모토 등의 캐릭터를 입간판으로 설치해 생동감을 더했으며, 일제의 수탈로 땅을 잃고 흩어지는 농민들의 모습을 표현한 100개의 미니어처 등 다양한 설치미술 작품도 선보인다.

‘아리랑’의 저자인 조정래 선생과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이 전시의 자문을 맡았으며, 학계 근대사 전공자들이 두루 고증에 참여했다. 화가 배준성씨와 팝 아티스트 김동유씨, 경향신문 시사만화가 박순찬씨 등이 활자의 세계에 갇혀있던 각 인물들에게 산 사람의 날숨을 불어넣었다.

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 사무총장은 “문학 속 주인공과 역사 속의 실제 인물이 만나는 이번 전시는 미처 기록되지 못한 민초들의 희생과 고통, 좌절을 딛고 일어선 투쟁의 힘을 확인시켜 줄 것”이라고 말했다. 27일에는 조정래 초청 강연회 ‘작가와의 만남’이 열린다. (02)969-0226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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