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여년 전 백제 기술자가 일본에 세운 세계 최고(最古)의 기업인 공고구미(金剛組)가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파산했다.
오랫동안 사찰 건축과 관련한 설계ㆍ시공과 복원ㆍ수리 부문에서 명성을 쌓아 온 이 회사는 최근 부채가 40억엔이 넘어서는 등 경영난에 시달리다가 올들어 본격적인 청산 절차를 밟아왔다. 결국 지난달 13일 법원에 자기파산을 신청했고, 26일 파산 절차 개시가 결정됐다.
공고구미가 창립된 것은 백제인 금강중광(金剛重光)에 의해서다. 그는 일본 고대 개혁 정치가로 유명한 쇼토쿠(聖德)태자가 578년 시텐노지(四天王寺)를 건립하기 위해 초대한 3인의 백제 기술자 중 한명이다. 이국 생활의 어려움과 망향의 한을 달래기 위해 불교에 귀의한 뒤 사찰 건립을 위한 건설회사를 만들었다.
이후 호류지(法隆寺) 등 수많은 사찰과 성 등을 건설하면서 일본 건축에 커다란 족적을 남겨 온 공고구미는 금강중광의 자손들에 의해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건설회사이자 기업이라는 명예를 얻게 됐다. 이코노미스트 등 경제전문지들은 자본주의와 기업의 역사를 다루는 기사에서 자주 공고구미를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이어져온 기업으로 꼽아왔다.
고대 백제의 건축 기술과 역사가 기적적으로 이어져온 공고구미는 일본에서 전통과 기술, 신뢰의 상징이었다. 이 회사가 지은 건축물은 그 규모가 크건 작건 공고구미의 자존심과 기술이 접목돼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어떤 공사를 맡아도 기본에 충실하고 보이는 곳보다는 보이지 않는 곳에 더 신경을 쓴다는 것이 이 회사의 경영 방침이었다. 지난 1995년 진도 7ㆍ2의 고베(神戶)대지진 때도 공고구미가 지은 사찰의 대웅전은 서까래 일부가 비틀어졌을 뿐 별다른 피해가 없었던 것은 좋은 예이다.
이 회사의 마지막 사장인 공고 마사카즈(金剛正和)씨는 올해 초 사찰 건축 부문을 다른 건설회사에 양도한 뒤 회사명을 케이지건설로 바꿨다. 대부분의 공고구미 종업원들을 함께 이적 시켰기 때문에 인수한 회사가 신(新)공고구미라는 말도 나온다. 금강(金剛)이라는 이름으로 1429년간 운영돼 온 공고구미의 전통이 부활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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