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불안하다. 여당과 청와대가 갈등을 빚는가 하면 대통령의 임기가 일년반이나 남았는데 벌써 레임덕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의 탈당 소문이 들리는가 하면, 여당이 인기없는 대통령을 믿기보다는 독자 노선으로 정권 재창출을 시도할 것이란 주장도 있다.
● 정치만을 위한 한국정치
도대체 왜 이리 된 걸까? 사실 이번에만 이런 것은 아니다. 임기말만 되면 대통령이 소속정당을 탈당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아마도 소속 정당과 임기말의 대통령이 결별하든 말든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을른지도 모른다. 오늘의 한국정치는 정치를 위한 정치에 불과하니까.
진정 정치는 왜 필요한 걸까? 다시 말해 우리는 왜 대통령을 뽑고 국회의원을 뽑아야 하는가? 한마디로 국민들 잘 살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는 왜 정치 그 자체만을 위한 정치가 되어버렸는가? 정치인들이 5년마다 돌아가면서 한 번씩 대통령 하겠다고 만든 5년단임제가 바로 그 원인이 아닐까? 단임제이니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지 내 임기 내에 내 멋대로 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노태우 정권은 3저 호경기로 축적한 경제력을 소모해버렸고, 김영삼 정권은 선진국 진입 운운하면서 외환위기 불러왔고, 김대중 정권은 조급한 경기부양을 위해 카드대란 만들어 낸 것이다.
정당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단임제는 편리한 제도이다. 임기말에 정치를 잘못해 대통령이 인기가 없으면 그 대통령을 탈당시켜 놓고 우리와는 관계가 없다고 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조금 양심이 있다면 정당의 이름을 바꾸거나 헤쳐모여 하면 될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해온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초등학교 교사까지 소위 다면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이 시대에 대통령과 여당은 평가를 피할 수 있지 않은가? 이래서 우리 정치가 정치 그 자체를 위한 정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정치를 위한 정치는 바로 단임제에 터하고 있음을 이제 우리 국민들은 깨달아야 한다.
뒤늦게 정치 일각에서 4년중임제 개헌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다행한 일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에서 반대의 입장을 취한다고 한다. 이대로 잘만 가면 정권을 잡는 일이 무난해 보이는데 평지풍파를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는 의도인 것 같다.
물론 이해는 간다. 그들도 정치를 위한 정치를 선호할 터이니까. 그러나 그런 식으로는 정권을 잡을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지난번 두 번의 대선에서의 실패가 바로 그런 자세 때문이 아니었는가?
필자는 단순한 4년중임제 도입 뿐 아니라 결선투표제가 있어야 정치만을 위한 정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 선거에서 투표자의 과반수 득표를 한 후보자가 없을 경우 다득표 순으로 두 명의 후보를 놓고 결선투표를 실시하여 다수표를 얻은 사람을 당선자로 할 경우 적어도 투표자 과반수의 지지를 얻은 대통령을 선출하게 되고, 그는 국민의 지지도를 염두에 두는 대통령이 될 것이다. 현행 제도에서는 세 명의 후보가 나와 투표자의 삼분지 일을 조금 넘게 득표한 사람이 당선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당선 당시에 30%대의 지지도를 지닌 대통령은 임기 동안 국민 지지도에 대해 신경 쓰지 않을 것이 뻔하다. 기왕에 낮은 지지도로 당선되었으니 국민들의 지지야 어떻든 내 식으로 내 임기만 끝내면 될 터이니까.
● 책임지게 하는 제도 만들자
지금껏 결선투표를 해 오지 않은 이유는 많은 선거비용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정보통신기술은 그 비용을 크게 낮추어줄 수 있다. 한나라당이 국민들의 지지를 자신한다면 결선투표제를 포함한 4년중임제 개헌에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제 정치를 정치 그 자체를 위한 정치에서 벗어나게 하자. 국민을 잘 살게 하는 정치가 되도록 정치도 평가를 받고 책임을 지게 하는 제도를 만들어 내자.
이영선ㆍ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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