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죄 지은 사회지도층에 대한 사법처리 과정엔 흔들림 없는 일관성이 있다. 개인별 시차만 있을 뿐, 거의 예외없이 구속→보석→집행유예→사면ㆍ복권의 수순을 밟는다. 그러다 보니 이들에게 '만기(滿期)복역'은 불이익이나 보복처럼 받아들여진다.
올 광복절 특사에 대해 재계와 여당은 불만이 많다. 사면ㆍ복권으로 마무리되어야 할 '범법 사회지도층 뒷처리원칙'을 이번에 경제인들에겐 왜 적용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검은 돈을 받았던 대통령 측근이나 야당 정치인은 풀어주면서, 재벌총수나 경영자들에겐 계속 족쇄를 걸어두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얘기다.
사실 이번 특사로 열린우리당의 스타일은 구겨졌다. 경제인 사면ㆍ복권은 김근태 의장이 재계를 투자전선으로 이끌기 위해 제안했던 '뉴딜'의 핵심 콘텐츠였는데 결과적으로 공수표가 됐으니 기업들 볼 낯이 없을 수 밖에. 여당의 '구애'에 편승해 심지어 최근 사법처리된 총수들까지 면죄부를 받아볼 요량이었던 재계 또한 맥이 빠지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경제인사면은 애초 꺼내지도, 기대하지도 말았어야 테마였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고 당 지지도가 바닥이어도, 사면은 '딜(deal)'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뉴딜의 또 다른 갈래인 출자총액제한 같은 정책적 사안은 그나마 찬반 토론거리라도 되지만, 죄값의 무게는 재계와 정치권이 주고 받을 성질이 아니다. 여당도 재계도 '경제 살리기'란 이름 아래 해서는 안될 거래를 시도하다, 결국 웃음거리만 되고 만 것이다.
특사는 정치인, 경제인의 형평성을 따질 문제가 아니다. 이번 8ㆍ15특사에서 잘못된 것은 부패정치인을 용서해준 것이지, 죄지은 경제인들을 계속 묶어둔 것이 아니다.
이성철 산업부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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