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한국전쟁 이후 거의 폐허가 된 가난한 환경에서 초ㆍ중학교를 어렵사리 다녔다. 중학교 2년 어느 봄날, 담임 선생님은 내게 교무실로 오라셨다. 이유인즉, 새로 교실 한 칸을 도서실로 만들어 당신이 도서 주임을 맡게 되었으니 네가 도서반장을 맡으라는 거였다. 나는 선택의 여지없이 하루아침에 새로 꾸미는 도서실의 도서반원이 되어, 매일 방과 후 늦게까지 책을 정리하는 일, 빌려주고 돌려받는 일을 했다.
아, 그런데 고등학교에 진학해서까지도 도서반장을 하게 되었고, 담임이자 사서 교사인 선생님의 정성스러운 지도 덕분에 대학의 문헌정보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학문을 전공하여 문헌정보학 교수가 되었으니, 이를 단순한 인연이라는 말로 넘길 일은 아닌가 싶다.
중학교 2학년 초부터 거의 2년 동안 나는 도서실에 새로 들어오는 책을 누구보다도 먼저 읽어치우는 등 왕성하게 독서를 할 기회가 있었고, 이 일이 나의 생애, 특히 학문의 길에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그 조그만 학교 도서실이 나에겐 위대한 스승이었고, 참으로 좋은 벗이었다. 폐허가 된 전후의 가난한 삶에 아름다움과 내적으로 충만한 영혼으로 나를 인도하여 주었기 때문이다.
며칠 후로 다가온 제 72차 ‘2006서울세계도서관정보대회’를 유치하기 위하여 나는 도서관협회 동지들과 거의 10여 년 간이나 동분서주하였으며, 이를 이루어냈다. 유치에 성공한 1999년 이후 7년간은 대회의 성공적인 준비를 위하여 혼신의 힘을 기울인, 글자 그대로 5대양 6대주를 누비며, 서울대회의 성공을 위해 홍보와 관계회의에 참석하는 숨가쁜 행보의 연속이었다.
전 세계 150여 국가의 5,000명이 넘는 각종 도서관의 관장과 전문사서, 문헌정보학자, 그리고 IT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215개의 학술세미나와 회의를 조직하는 일, 37개 도서관 방문프로그램, 개막식과 문화의 밤 등 행사 준비, 그리고 이에 필요한 60여 억원의 재원을 조달하는 일 등에 매달리면서도 나는 용기를 잃지 않았다.
우리 한국도서관협회와 조직위원회는 정부와 기업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도서관: 지식정보사회의 역동적 엔진’이란 주제로 이번 세계도서관정보대회를 개최한다. 디지털도서관발전문제, 어린이청소년도서관과 독서문제, 세계적 시야에서의 저작권문제 등 21세기 지식정보사회에서 도서관은 무엇이며, 그 본질적 기능은 어떠해야 하는 가를 발표하고 토론하며, 그 대안을 제시하는 대규모의 문화와 지식 올림픽인 이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낼 것을 다짐하고 있다.
중ㆍ고등학교에서 선생님께 지명을 받고 시작한 나와 도서관의 관계, 그리고 그 도서관에서 삶의 지표를 세울 수 있도록 독서를 할 수 있었던 은총을 선사받은 나는 분명 행복한 사람이다.
이제 국민들의 관심과 격려 속에 진정한 문화의 축제를 펼치므로, 세계의 참가자들로 하여금 우리나라의 찬연한 문화에 접할 기회를 갖도록 하는 한편, 우리 모두는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도서관 문화를 꽃피우게 되기를 기원할 뿐이다.
/연세대 부총장ㆍ2006 서울세계도서관정보대회 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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