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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안보에 어른이 돼야 할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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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안보에 어른이 돼야 할 한국'

입력
2006.08.15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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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나간 전시 작전통제권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국가 존망이 걸렸다는 비명까지 들린다. 안보 위기론을 곧이 듣는다면, 2009년이든 2012년이든 작전통제권을 이양ㆍ환수하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 한미 두 나라는 안보와 동맹을 스스로 위태롭게 할 방책을 열심히 궁리하는 셈이다. 황당한 음모론을 떠들 생각이 아니라면, 상식과 순리를 되찾아야 한다.

어지러운 논란에 1970년 대 말의 기억을 떠올렸다. 평시와 전시 구분 없이 미군이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던 시절, 미 해군사령관 지휘벙커 상황장교로 근무할 때다. 원래 소속된 한국함대 작전상황실에서 은밀한 지시를 했다.

전투함 몇 척의 작전위치를 거짓 보고할 것이니 모른체 하라는 얘기였다. 연안에 침투한 북한 간첩선을 뒤쫓다 번번이 놓치는데 진노한 박정희 대통령의 특명에 따라 간첩선이 우회 침투하는 우리 작전수역 밖 일본 근해에 구축함 세력을 몰래 배치, 길목을 지킬 것이란 귀띔이었다.

● 상식 벗어난 전시 작전통제권 논란

그러나 비밀작전은 이내 들통 났다. 24시간이 지나지 않아 미군 쪽에서 작전수역 밖 정체불명 함정의 확인을 요구했다. 말은 그랬지만 위성 정보 등으로 우리 함정임을 뻔히 알고 있었다. 구축함 편대는 부랴부랴 철수했다.

하지만 그 무렵 자주국방을 내세워 미국과 갈등을 거듭한 대통령을 좇아 미군과 신경전을 벌이던 군인들은 잠시나마 작전통제권을 무시한 쾌거에 즐거워했다. 다만 군 통수권이 미군사령관의 권한을 넘어설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자괴심은 그대로 남았다.

10년 뒤, 군 출신 노태우 대통령이 작전통제권 환수를 대선 공약으로 추진한 사실은 새삼 흥미롭다. 신군부 집권과 관련해 반미 감정이 커진 시대상황을 이용했다지만, 70년 대 말의 '자주국방'이 민족의식을 일깨운 것과 무관치 않으리라 짐작한다. 그가 12ㆍ12 때 작전통제권을 무시한 채 9사단 병력을 동원, 최전방 방어 임무를 저버린 원죄를 지닌 사실도 특기할 만하다.

이렇듯 미묘한 작전통제권이 김영삼 정부에 이르러 일부 환수된 것도 어찌 보면 아이러니다. 그러나 어느 대통령보다 친미적인 YS가 평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제2 창군'이라고 자부한 것이 무식해서 용감한 사례는 아닐 것이다.

그 때 이미 2000년을 전후한 전시 작전권 환수에 합의한 것이 안보와 동맹을 해치는 일이라면, YS는 외환위기에 앞서 만고의 죄인이 돼야 한다..

위기론은 이쯤에서 북한이 핵을 가진 지금의 안보상황은 전혀 다르다고 주장한다. 우리 힘만으로 핵과 화학무기 전력을 상대할 수 없다는 논리다. 언뜻 그럴 듯 하지만 미군이 작전통제권을 넘기고 나면 북한의 위협에 손 놓고 구경만 할 것이라는 얘긴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재래식 전력도 열세라고 떠들지만, 군과 관련연구기관은 늘 신무기 증강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독자 작전권 행사를 누구보다 반길 군이 조용한 까닭을 잘 헤아려야 한다.

미국이 홧김에 작전통제권 이양을 서둔다거나, 급기야 미군 철수를 단행할 수 있다는 논리는 특히 조잡하다. '전략적 유연성'을 앞세운 미군 재배치는 주둔국의 반미 정서까지 고려한 것이지만, 한국에서 쉽게 발을 뺄 것을 걱정하는 것이야말로 부질없는 기우다. 유치한 논리로 안보와 동맹의 장래를 뜨겁게 논란하는 것은 오히려 한가하게 비친다.

● 대북안보 넘어 미국 의도 해아려야

엉뚱한 논란에 사회가 휘둘리는 것은 정부가 안보와 동맹 문제에서 신뢰를 얻지 못한 탓이 크다. 안보 문제는 보수와 안정을 좇는 국민 심리도 작용한다. 그러나 나라 밖 전문가들은 "경제ㆍ군사적 거인으로 성장한 한국은 안보의식도 어른이 돼야 한다"고 충고한다.

미국이 한미 연합지휘체제의 변화를 꾀하는 것에 그저 대북 안보를 걱정할게 아니라, 북한의 붕괴 등 돌발사태에 누가 개입하고 누가 물러설 지를 내다보라는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한다. 보수의 비명이 이런 성찰을 가로막는 것을 경계하는 지혜가 아쉽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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