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8ㆍ15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앞두고 일본 정부 안팎에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주로 고이즈미 총리가 참배를 강행할 경우 직면할 외교적 파장과 갈등을 걱정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A급 전범을 합사하고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야스쿠니 신사 자체에 대한 논의도 진지하게 시작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의 TV방송들은 14일 뉴스와 토론, 특집 프로그램 등을 통해 야스쿠니 문제를 크게 부각시켰다. 고이즈미 총리의 8ㆍ15 참배를 기정 사실화하고 있는 방송들은 대부분 한국과 중국의 반발이 어느 때보다 격렬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언론들은 특히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 이후 21년 만인 고이즈미 총리의 8ㆍ15 참배를 부담스럽게 여기는 것 같다. ‘종전기념일’에 이루어질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일본의 책임이 자연스럽게 겹쳐져 야스쿠니 문제가 단순한 국내 문제나 외교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이 스스로 풀어야 할 일본의 역사문제임을 실감하게 하는 계기가 되는 느낌이다.
TV아사히(朝日)가 종전기념 특집에서 증언자의 입을 통해 “지금은 뭔가 전전(戰前)과 닮은 분위기가 조성되는 감이 든다”“뭔가 서서히 (우익쪽으로) 경도되는 분위기를 느낀다”고 지적한 것은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이날 방송에서는 A급 전범 분사론 등 야스쿠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찾는 토론도 활발히 펼쳐졌다. 고이즈미 총리의 8ㆍ15 참배는 그 동안 무심했던 일본 국민들에게 역사 문제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로도 작용하고 있다.
일본 정계도 긴장한 표정이다. 정치인들은 대부분 “고이즈미 총리가 자신의 공약만 생각하고 국익은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도 “총리의 참배는 확실하다”며 고개를 젓고 있다. 도쿄(東京)의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일본의 관계당국은 한달 전부터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가 미칠 외교적 파장을 면밀하게 조사해 총리 관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계자들은 한국과 중국 국민들의 예상 반응과 양국 언론의 논조 등을 분석하는 등 8ㆍ15 참배가 실행될 경우의 대응책을 마련했다.
반면 주일 한국대사관의 표정은 예상보다는 담담하다. 참배를 전제로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는 한국대사관측은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를 심각하지만 냉정하게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라며 “일본측의 오해를 막는다는 차원에서 점잖으면서도 강력하게 대응할 것”고 밝혔다.
도쿄=김철훈 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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