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주얼 의류 매장에서 분홍 미니원피스를 봤다. 어깨선을 살짝 내려오는 짧은 소매만 희다. 딱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인데, 내 나이에 입기엔 무리일 것 같았다. 그런데 매장에서 한 번 입어나 보자던 것이 그예 그 옷을 사고야 말았다.
처음 그 원피스를 싸들고 헬스장을 가던 길, 땡볕 속을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걸었다. 운동을 마치고 드디어 원피스를 입는데 문득, 안이 비쳐 보일까 걱정됐다. 그래서 막 운동복을 입고 있는 한 아가씨에게 점검을 부탁했다.
"안 비쳐요." 그 한 마디에 벙싯 입이 벌어지는데, 심상치 않은 어조로 아가씨의 말이 이어졌다. "근데, 그거 입고 밖에 나가려고요?" 철렁! 아가씨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좀 설움에 차서 화장을 하는 동안 아가씨가 나가고 예순이 다 되신 아주머니가 들어 왔다. "옷, 정말 예쁘다!" "좀 전에 그 아가씨는 입지 말라는 데요."
"왜?" 내가 당한 폭력적 언사를 일러바친 후 "어린 아가씨가 점잖은가 봐요"로 말을 맺자 아주머니는 문을 향해 눈을 흘기기까지 하며 소리를 높였다. "점잖기는! 꽉 막힌 거지. 시원해 보이고 잘 어울리니까 얼마든지 입어!" 샘물 같은 말씀이었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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