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도심 곳곳에서는 보수ㆍ진보단체들의 집회가 잇따랐다. 올해의 화두도 역시 ‘미국’과 ‘보ㆍ혁’이었다. 특히 올해는 한미 FTA 협상과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가 겹쳐지면서 광복절이 완전히 이념 투쟁의 날로 바뀌어버린 모습이다.
이날 오후 3시 주한 미 대사관 인근 KT 건물 앞에서 통일연대가 주최한 ‘반미자주반전평화 결의대회’는 미국을 향한 성토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소속 대학생들과 진보단체 인사 등 3,000여명의 집회 참가자들은 푸른색 한반도기를 들고 ‘주한 미군 철수’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철회’ 등 구호를 외치며, 6ㆍ15 공동선언의 조속한 이행과 한미 FTA 협상 중단 등을 촉구했다.
이들은 “현재 미국은 한국에 대해 군사적ㆍ경제적 종속화 정책을 노골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이는 결국 한반도의 자주와 평화를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오전에는 한나라당사 앞과 동아일보사 앞에서 한나라당 해체 결의대회와 보수언론 규탄대회를 갖기도 했다. 이어 저녁에는 연세대로 이동해 한총련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등 진보 단체 소속 회원 5,0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8·15 통일 대축전’ 행사를 계속했다.
이에 맞서 보수단체인 반핵반김국민협의회 회원 4,000여 명은 오후 2시부터 서울 종묘공원에서 ‘북핵ㆍ미사일도발규탄ㆍ한미동맹강화 국민대회’를 개최했다. 참석자들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발사, 한미동맹 균열과 친북세력 발호 등 현 상황을 총체적 위기”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한미동맹이 급격히 흔들리고 좌경화하고 있다”며 현 정부가 추진 중인 전시 작전권 환수 조치를 강력히 규탄했다. 한 참석자는 양 손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번갈아 흔들어 대며 “한미동맹 강화만이 우리의 살 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 중 일부는 집회를 마친 뒤 세종로 교보문고까지 거리행진을 했다.
이날 양측의 행사는 광화문 일대에서 비슷한 시간대에 열려 물리적 충돌이 우려됐으나 다행히 큰 불상사는 없었다. 그러나 보ㆍ혁 간 극한 대립을 바라보는 시민들은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대학생 이지현(24ㆍ여)씨는 “무슨 일만 터지면 이해관계에 따라 온 나라가 둘로 쪼개져 죽기 아니면 살기식으로 싸우는데 하나로 뜻을 모으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며 씁쓸해 했다.
회사원 황성현(30)씨도 “서로 자신들의 주장이 국익을 위하는 길이라고 내세우지만 사안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지 않기는 보수나 진보나 마찬가지”라며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대화와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아쉽다”고 말했다.
광복절인 15일에도 한총련 통일연대 등 진보단체들이 연세대와 광화문 열린시민마당 등에서, 50여 개 보수단체로 구성된 범보수연합이 서울시청 앞에서 각각 집회를 열 계획이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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