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 대표들은 노사관계 로드맵의 논의 시한을 당초의 8월 10일에서 9월 4일로 연기하였다. 복수노조와 전임자임금 문제등에 대하여 의견이 달라서 연기하게 된 것이라고 하지만 협상기한을 연기하게 된 속사정은 따로 있다.
즉 8월말 예정되어 있는 국제노동기구(ILO) 아시아태평양총회의 외국손님들 앞에서 노사정간의 극한 갈등 양상을 보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작년 10월 부산에서 개최키로 한 국제노동기구 아시아태평양총회가 국내의 노정 갈등으로 무산된 전력이 있으므로 정부는 국제적인 시선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현행법에 의하면 2007년 1월 1일부터 복수노조는 허용되고 노조전임자의 임금 지급은 금지된다. 이 시행일자는 이미 5년 전부터 정해진 일자이므로 세부적 시행방향을 준비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실시기한이 불과 4개월반밖에 남지 않은 아직까지도 세부 정책이 확정되지 않은 것은 노사관계의 불확실성을 높여서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한심한 일이다. 예를 들면 복수노조 도입시 자율교섭을 할 지 창구단일화를 할 지 협상의 기본틀이 확정되지 않아 기업과 노조가 구체적 대응전략을 수립할 수 없도록 하여 현장노사관계의 혼란을 피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노동정책의 현안들은 노사간의 이견이 첨예하게 맞부딪치는 사안들로서 정부안의 일방적 추진은 극심한 반발을 가져올 수 있다. 이들을 추진하기에 가장 좋은 논의의 장은 노사정협의체이다.
그러나 한국 최초의 노사정협의체로서의 노사정위원회는 1998년 경제위기시 시작되어 노사간 대타협을 이루어낸 바 있으나, 그 이후에는 거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로드맵과 같은 노사간의 시급한 현안을 다루기 위하여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낸 기구가 노사정위원회이건만 거의 9년 가까이 의미있는 역할을 못하는 것은 답답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일정대로 9월초에 로드맵에 대한 입법예고를 하더라도 남은 일정은 아주 빠듯하다. 국회에서 여야간 의견의 불일치가 커서 논의가 지연된다면 올해 내 입법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현 정부로서는 임기말 레임덕이 가까워지면서 정책추진력이 현저히 떨어진 상황에서 이 법의 시행을 또다시 연기하여 다음 정권으로 넘기자는 유혹을 느낄만하다.
그러나 이미 10년을 시행연기한 법안을 준비 부족으로 또 다시 연기한다는 것은 역사의 기록에 남기기에도 부끄러운 일이다. 언젠가 해야 할 일이라면 지금 결단을 내려야 한다. 불확실성의 조기해소는 한국 노사관계의 갈등 감소에도 도움이 된다.
현재 이 두 이슈에 대한 노사간의 합의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복수노조 허용에 대하여는 경영계는 창구단일화, 노동계는 노사자율을 주장하고 있다. 전임자 임금지급에 대하여 경영계는 전면금지, 노동계는 노사자율로 지급이 가능하도록 하자는 입장이다. 사실상 노사간 합의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이제는 정부가 결단을 하여야 한다.
정부는 과감하게 소신대로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되는 공익안을 입법하는 수밖에 없다. 현재 상황에서 노사를 모두 만족시키는 안은 어차피 없는 것이다. 경영자의 최악의 선택은 틀린 결정보다는 아무 결정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 경영학의 명제를 국가경영자인 정부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대ㆍ노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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