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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우리시대의 김정호' 다리로 쓴 옛고을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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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우리시대의 김정호' 다리로 쓴 옛고을 답사기

입력
2006.08.14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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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로 사라진 옛고을을 가다1·2·3

손ㆍ머리보다 다리ㆍ가슴으로 우리 민족사를 더듬어 온 길 위의 사학자 신정일(52ㆍ황토현문화연구소장)씨가 이번에는 ‘대동여지도’의 옛길에서 만난 마을 이야기를 썼다. 고산자의 지도 속에서 은성했던 시간 뒤로, 그 지도처럼 바래며 조용히 쇠락해온 마을들…. 그 마을들의 어제와 오늘을, 그 역사와 문화와 풍경과 사람들을 썼다. ‘대동여지도로 사라진 옛고을을 가다 1ㆍ2ㆍ3’(황금나침반 펴냄, 각권 1만6,000원)이다.

그는 어쩌지 못할 시간의 그늘들을 찾아 다닌다.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매양 봄여름 동안 비린내가 온 마을에 넘치고 작은 배들이 밤낮으로 두 갈래진 항구에 담처럼 벌여 있”다던 충남 논산 은진 강경포구. 오늘 그는, 금강 하구 둑이 뱃길을 막으면서 더 이상 갯것의 날비린내를 품지 못하고 고리삭은 젓갈 냄새에 젖어있는 포구의 노을을 응시한다. 전북에서 전주 다음으로 큰 고을로 조선 세도가의 자제들이 앞 다퉈 벼슬을 살고자 했다는 풍요의 고을, 정읍 고부에서는 동학의 전봉준과 증산교의 강일순을 낳은 두승산 너머로 떨어지는 해를 바라본다.

그 그늘 속에는, 이제 누구 하나 입 추어 말하지도 귀담아 들으려고도 않는 마을의 사연들이 있다. 그는 그늘이 들려주는 그 이야기를 전한다. ‘한양 열 양반이 안의 송장 하나를 못 당한다’는 말이 있다는 기질 센 마을 안의(경남 함양), 조선 후기 혁명가 이필제(李弼濟)의 고장 영해(경북 영덕), 군수 조병갑의 학정에 맞서 동학농민전쟁의 불씨를 지폈던 거역의 땅 고부(전북 정읍)…. 모두 조선시대 버젓한 군현으로 주변 고을들을 아우르던 고장이지만, 1914년 조선총독부의 군ㆍ면 통폐합으로 폐군ㆍ폐현된 곳들이다. 신정일씨는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에는 행정 편의 이전에 조선 민중들의 저항의 기질을 찢어 누르려는 의도가 숨어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당시 일제는 전국 97개 군과 1,817개 면을 지도에서 지웠다.

쇠락의 그늘에는 아름다운 풍광으로 조선 선비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마을들도 들어있다. 안평대군이 사사(賜死)되고 연산군이 생을 마친 격절의 섬 교동(인천 강화), 충주호에 잠긴 청풍 명월의 고을 청풍(충북 제천), 대청댐 푸른 물 아래 “옛 고을의 흔적으로 출렁이는”문의(충북 청원)….

그는 남한 8대강과 영남대로(부산-양산-삼랑진-밀양-청도-대구-구미-상주-문경-충주-음성-이천-용인-판교-서울), 삼남대로(해남-강진-영암-나주-장성-정읍-논산-공주-차령-천안-평택-오산-수원-남태령-서울) 1만 2,000㎞를 걸었다고 했다. 그 멀고 고단한 여정이 쇠락한 것들에 대한 애잔한 상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사라진 것들, 잊힌 것들에 대한 나의 사랑이자 그리움의 표시이며 헌사(獻辭)”라고 말했다. 그 헌사는 오늘, 그리고 내일 잊힐 것들에 대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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