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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남진우 시집 '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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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남진우 시집 '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

입력
2006.08.14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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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우 시의 본적은 묘지다. 때때로 책들의 무덤인 도서관이나 우물, 항아리 속으로 주거를 옮기기도 하지만, 파묻히는 곳이 아니면 가지 않는 그의 시는 한 번도 제 주소를 죽음이라는 본적지에서 전출한 적이 없다. 문학 평론가이자 시인인 남진우 씨가 네 번째 시집 ‘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문학과지성사ㆍ6,000원)를 펴냈다. ‘타오르는 책’ 이후 6년 만이다.

사자, 여우, 개, 호랑이, 악어떼, 벌, 전갈, 낙타 등이 끊임없이 출몰하며 ‘동물의 왕국’을 이루는 이번 시집에서 화자는 번제에 바쳐진 제물처럼 물어 뜯기고 찢긴다. “한껏 아가리를 벌린 호랑이는 단숨에 나를 삼켜버리고” (‘먼 산 먼 길’), “책을 펼치면 전갈에 발뒤꿈치를 물린 채 낙타 등 위에 혼곤히 엎드린 내가 보인다” (‘전갈에 물리다).

그러나 시인은 목 잘린 얼굴, 피눈물을 흘리는 깊게 파인 눈구멍, 절단된 사지가 나뒹구는 이 그로테스크한 세속 도시에서 순교를 앞둔 사도처럼 묵묵하기만 하다.

그가 “아득히 먼 사막의 길을 걸어 사자 한 마리/ 내 방 문 앞까지 왔다/ 내 가슴의 샘에 머리를 처박고/ 긴 밤 물을 마시기 위해”(‘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라고 쓸 때, “밤이면 밤마다 죽은 여인이 다가와/ 네 튼튼한 심장을 먹고 싶다, 조금만 다오 말했네// 두 팔에 안긴 채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 내 심장을 먹어가며/ 죽은 여인은 밤새도록 눈물을 흘렸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고 쓸 때, 시인은 아픈 몸을 내주며 새끼에게 젖을 물리는 어미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똑딱거리는 심장이 그마저 멈출 날을 기다릴 뿐” 그는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추적자가 문을 두드리는 이 “낡고 더러운 소문의 도시”에 “방주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문 밖에서’)고, “내 인생에 더 이상 반전은 없다” (‘나는 흑색 소설만 읽는다’)는 것을 익히 아는 탓이다.

이 시인의 시 세계를 구축하는, 성(聖)을 향한 귀족주의는 ‘새벽 세 시…’에서도 여전하다. 세속 도시를 떠나 앙코르와트로, 반얀트리 밑으로, 카타콤으로 순례의 행보를 내디뎌 보지만, “순례자 대신 장사치와 관광객들로 붐비는 거리/ 영혼의 감옥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자들이 비좁은 계단 사이 어깨를 부딪치며/ 값싼 지폐와 시성을 교환하기 위해 오”가는 이곳에서 그의 시는 홀로 성스럽고자 하는 자의 고독으로 울울할 뿐이다.

(‘몽생미셸’)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선지자조차 지쳐 떨어진 밤/ 길가 하수구는 붕글어 터지는 말의 거품들로 가득”하고 (‘겨울일기’), 그는 다만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라던 기형도의 '켤레시인'답게 읊조릴 뿐이다. “흑색 소설을 읽으며 오늘도 나는 확인한다, 모든 길 끝엔 파헤쳐진 무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흑색 소설만을 읽는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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