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태(59) 삼성전자 사장은 "내 평생의 꿈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지난 9일 뉴욕에서 열렸던, 삼성전자의 휴대인터넷(와이브로) 기술을 미국에 수출키로 한 협약식 자리에서였다. '애니콜 신화'를 넘어 '와이브로 신화'에 다가간 이 사장은 넘치는 흥분을 애써 감추는 듯 했다.
이 사장은 삼성전자의 스타CEO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기적하면 대중들의 뇌리속에 '진대제'가 떠오르듯, 휴대폰의 신화엔 이제'이기태'이름 석자가 늘 따라다닌다.
유학ㆍ영입파인 진대제 전 사장과는 달리 이 사장은 순수 토종이다. 대전 보문고와 인하대 전기공학과를 나와 1973년 삼성전자 라디오과에 음향기 관련 엔지니어로 입사한 그는 지금까지 그 흔한 해외연수나 유학조차 간 적이 없다.
석ㆍ박사 학위도 없다. 그렇지만 그는 애니콜을 세계적 최고급 브랜드로 키우고, 와이브로를 미국 기간망으로 채택시키는 경이적인 성과를 일궈냈다.
이 사장의 힘은 저돌적인 추진력에 나온다는 것이 삼성전자 직원들의 평가다. 이미 고교 시절 얻은 '깜빡이 없는 불도저'라는 별명처럼, 그는 타고난 '탱크'스타일이다.
이런 성격은 때론 불협화음을 내기도 한다. 시작한 일은 반드시 끝장을 보지만, 대신 남이 간섭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스타일이다. 과장, 부장 시절 사표를 던진 적이 한 두번이 아니고 85년 비디오 사업부장을 맡았을 때엔 20여일이나 출근을 거부한 적도 있었다.
그가 이동통신과 인연을 맺은 것은 94년 무선사업부문 이사로 발령받으면서부터다. 당시 무선통신은 매출도 취약했고 장래성도 없어 보였던 터라, 주위에선 "이기태가 물먹었다"고 수근거렸다. 그러나 이것이 애니콜 신화의 서막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무선사업부문 이사로 취임한 그는 전국에서 수거한 15만대의 불량품을 직원들 앞에서 모조리 불태우면서 품질제일주의를 선언했다.
그의 품질개선노력은 독특했다. 직원들이 새로 만들어온 휴대폰을 발로 짓밟거나 차가 뭉개고 지나가도록 하는 방식으로 내구성을 시험했는데, 밟아도 깨지지 않는 애니콜의 튼튼함도 여기서 시작됐다.
2001년 정보통신총괄 사장으로 취임한 그는 한결같이 '프리미엄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중저가 제품을 만들기 시작하면 당장 매출은 좋을지 몰라도 결국 애니콜 자체가 중저가 브랜드로 추락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 사장은 모토로라나 노키아 등 경쟁사의 신제품이 출시되어도 절대 보지 않는다고 한다. 보면 따라하고 싶고, 그러다 보면 애니콜의 프리미엄전략이 흔들릴 것이란 때문이다.
토종CEO인 이 사장은 "토종기술로 세계 제일의 제품을 만드는 것이 내 꿈"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와이브로 미국진출로 이 꿈에 한발 다가간 그가 또 어떤 신화를 일궈낼지 주목된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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