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행복합니다. 항상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ㆍ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 인생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데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니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서울 도심에 3.8평의 땅이 있으니 노숙자들에 비하면 큰 축복을 받은 셈이지요. 허허.”
9일 서울 중구에 있는 대한민국 헌정회 사무실. 전ㆍ현직 국회의원 40여명으로부터 3,470 만원의 성금을 전달 받은 박영록(84) 전 의원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곧바로 고마움의 눈물이 뒤따랐다. 4선 경력의 박 전 의원은 신민당ㆍ평민당 부총재, 민주당 최고위원 등을 지내는 등 한때는 정계의 거물이었지만 지금은 1.5평짜리 컨테이너(주변 포함 3.8평)에서 쓸쓸히 말년을 보내고 있다. 그가 서울 성북구 삼선동 길거리에 설치한 컨테이너에서 생활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전ㆍ현직 의원들이 성금을 모아 그에게 전달하게 된 것이다.
민주당 이낙연 의원은 10일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열린우리당 정대철 상임고문의 제의에 따라 40여명이 돈을 모아왔다”며 “박 전 의원이 임대주택을 얻는데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성금 전달식에는 송방용 헌정회장, 정대철 고문과 이낙연 의원, 우리당 강성종 의원 등이 참석했다.
강원도지사를 지낸 뒤 1963년 국회에 입성한 박 전 의원은 군사정권 시절 야당 지도자인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등과 함께 민주화 투쟁을 해왔다. 그는 1970년 의원 자격으로 독일을 방문, 손수 끌과 망치를 이용해 베를린올림픽 승리기념비에 새겨진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의 일본 국적을 한국으로 바로 잡아 화제를 낳기도 했다.
그는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뒤 1996년 민족사회단체총연합회를 만들어 총재로 활동했지만 연합회 사무실 임대료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는 2003년에 40년간 살았던 삼선동의 35평 자택을 공매처분 당하자 남은 200만 원을 들여 골목에 컨테이너를 장만했다.
박 전 의원 부부는 이웃 집의 화장실을 이용하고 물을 얻어다 썼다. 설상가상으로 2004년에는 사업에 실패한 차남이 “부모님을 모시지도 못하고 고생만 시켜 죄송하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석원 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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