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은 대단히 바쁜 지휘자다. 그가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를 맡은 서울시향은 올해 무려 100회의 공연을 한다. 그 중 40회가 자치구 문화회관 등을 '찾아가는 음악회'다.
이 행사는 '문화의 민주주의를 일구는 동네음악회'로 평가되고 있지만, 본인의 기대는 좀 다르다. 목적의 99.9%는 오케스트라 훈련이며 0.1%가 시민 서비스라는 것이다. 그만큼 서울시향은 아직 정확하지도, 완벽하지도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확하고 완벽한 연주는 교향악단의 기본이다. 그가 올해 베토벤을 주제로 잡아 연말까지 1~9번 교향곡을 연주키로 한 것도 기본을 훈련시키기 위한 것이다. 왜 베토벤만 연주하는가. 교향악을 음악적 원천으로 삼는 오케스트라로서는 베토벤이 늘 출발점일 수밖에 없다, 베토벤의 교향악은 가장 위대한 모범이다-이런 생각인 것이다.
● 1년 간 베토벤만 연주하는 집념
그러나 정확한 연주가 전부는 아니다. 정확성은 음악의 80%를 이루는 요소이지만, 나머지 20%는 정확성만으로 채울 수 없다. 멋지게 연주하고 독특한 컬러를 넣는 일, 그것이 나머지 20%다. 음악을 통해 대중에게 가장 전달하고 싶은 것이 형제애(brothership)라고 말하는 그의 메시지는 베토벤 9번을 통해 확실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 메시지의 전달은 정확성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시 그가 고문으로 지휘를 맡는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그야말로 정확하게 연주를 하는데, 그 이상을 할 줄 몰라서 힘들어 한다는 것이다. 정확성만으로는 결코 음악이 완성되지 않는다.
서울시향과 도쿄 필의 상반된 고민을 기계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도쿄 필의 경우는 정확함과 완벽을 추구하는 일본인들의 체질과 풍토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 한국인들의 헐렁한 느슨함이나 멋과 흥은 단점이면서도 음악의 완성에 필수 요소일 수 있다.
음악을 완성하는 바탕은 결국 인간의 됨됨이와 자유로운 정신일 것이다. 정명훈은 그래서 단원을 칭찬할 때 실력이 좋다고 말하기보다 사람이 참 괜찮다고 말한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성이라고 믿으면서도 나머지 20%의 가능성을 열어 두기 위한 태도다.
음악을 지휘하고 연주하는 것, 세상을 살아가는 것 역시 기본에 충실하면서 기본 이상의 성취를 위해 애쓰는 일이 아닌가 싶다. 80 대 20이든 90 대 10이든 모든 일은 균형의 힘에 의해 가능해진다. 그 균형이라는 것도 단순하고 의도적인 균형이 아니라 편안한 균형이어야 할 것이다.
정명훈이 지휘봉을 잡은 지는 올해로 30년. 덜 알려져 있지만 1976년 뉴욕청소년 심포니를 지휘한 것이 출발점이다. 세계적 피아니스트가 되고도 지휘로 길을 바꾼 그는 두 가지 사이에서 늘 갈등을 겪었고, 지금도 지휘와 피아노 중 하나를 택하라면 피아노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메조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의 3월 내한공연에서 피아노 반주를 맡았던 그는 9일에도 성남아트센터에서 모차르트 5중주(KV.452), 브람스 4중주(Op.25)에 나와 피아노를 쳤다.
'마에스트로 정명훈과 친구들의 밤' 공연이 끝난 뒤 "실수도 하지만 피아노를 치는 게 재미있다"고 말하는 모습은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지휘와 피아노의 균형, 음악과 요리(그는 프로급 요리사다)의 균형…이런 여러 균형이 그를 이끌어 가는 것처럼 보였다.
● 음악과 삶을 이끄는 편안한 균형
올해 한국 나이로 54세인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고국에 돌아오는 것이 편안해졌다고 말했다. "젊어서는 해외가 훨씬 편했지만 나이가 들어 그런지 한국에 돌아오면 친밀감과 안정을 느끼고 서울시향 덕분에 고향을 찾은 것 같다"는 소감이었다. 그가 획득한 편안한 균형의 힘은 서울시향의 수준을 높여가고 있다.
편안하다는 것은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것, 있어야 할 것이 제 자리에 있는 것, 무리와 억지가 없는 것 그런 것들일 터이다. 정명훈을 들으면서 "나쁜 오케스트라는 없다. 나쁜 지휘자가 있을 뿐이다. 나쁜 나라도 없다. 나쁜 지도자가 있을 뿐이다"라는 말과 함께, 편안한 균형의 힘을 생각한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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