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작전통제권 논란이 대통령의 9일 언론 회견으로 누그러지기는커녕 한층 뜨거워졌다. 안보에 중요한 사안을 놓고 정부와 민간, 여와 야, 보수와 진보 등을 경계로 서로 다른 논리를 갖고 진지하게 토론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언론을 비롯한 사회 각계가 지금껏 치열하게 다투는 양상은 문제의 본질을 벗어나 왜곡된 논쟁에 치우치고 있다. 이제라도 본질을 정확히 헤아려 국가적 선택을 함께 고민하는 자세가 절실하다.
먼저 이 문제를 정부의 이념적 정체성과 곧장 연결짓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정부를 옹호해서가 아니라, 그래야 선입견 없이 본질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평시와 전시를 포함한 작전통제권 논란은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도 더러 물밑에서 불거졌을 만큼 그 연혁이 오래다. 물론 그 때는 동맹 갈등을 부추겼지만, 김영삼 정부에 이르러 한미 양국이 평시 작통권 이양ㆍ환수에 이렇다 할 갈등 없이 합의한 것은 그게 순리임을 일러 준다.
전시 작통권은 안보와 동맹관계에 걸린 정치군사적 의미가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마냥 미국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될 수 없는 것은 자주냐 동맹이냐의 이념 논쟁과 무관하게 자명하다. 다만 평시 작통권처럼 실제 되돌려 받는 것은 안보와 동맹의 현실적 여건과 동맹 각자의 필요성 등을 신중하게 검토, 협의해 결정할 문제일 따름이다.
한미 양국은 이미 오랫동안 전시 작통권 이양ㆍ환수를 공식 협의해왔다. 따라서 그 시기와 후속조치 등을 결정하는 데 정부의 기본이념과 안보ㆍ동맹관이 작용할 수 있지만, 본질적 과제는 역시 안보 현실과 우리의 역량을 정확히 평가하고 한미 양국의 정치군사적 이해를 적절히 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사회적 논란이 왜곡된 것은 전시 작통권 이양과 관련된 미국의 전략적 이해와 정책 기조부터 엉뚱하게 풀이하는 데서 두드러진다.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 개념을 토대로 전 세계 미군기지의 재배치를 진행하고 있다. 새로운 도전에 대처한다는 명분이지만 미군 주둔국의 반미 감정과 환경규제 등을 폭 넓게 고려, 미군의 전략적 운용을 쉽게 하려는 목적이다. 전시 작통권 이양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따라서 마치 미국이 한국정부의 일방적 작통권 이양 요구에 불만을 갖고 조기 이양을 역 제안한 것처럼 풀이하는 것은 어색하다. 한미연합사령관이 "한국의 독자적 전시 작통권 행사를 지지한다"고 밝힌 사실은 우리 사회의 논란이 본질에서 벗어났음을 단적으로 일깨운다.
국민의 안보 인식이 달라졌지만 한미 동맹체제의 근본적 변화에 막연하나마 불안감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군 원로 등 보수계층의 우려도 이런 차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정부는 국민의 이해를 넓히는 데 미리 힘쓰지 않은 것을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여론을 이끈다는 사회집단들이 본질을 외면한 채 무작정 동맹과 안보 위기를 외치는 것은 그만둬야 마땅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