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과 다시래기, 강강술래의 고향 진도에 귀한 손님들이 찾아왔다. 로렌 토마스 사만다 마가릿 네이던…. 이름은 낯설지만 살구색 피부와 검은 머리카락은 한국의 여느 청소년들과 똑같다. 젖먹이 때 미국으로 입양되거나 미국에서 태어난 재미동포 2세들이다. 9일 전남 진도군 임화면 국립남도국악원은 한국의 가락을 익히러 미국에서 온 16명 아이들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했다.
“그런 걸 ‘신명난다’고 하는 거야.”
사물놀이를 가르치던 국악원 교사는 능숙한 솜씨로 꽹과리를 다루는 애덤 임(21ㆍ뉴저지 브룩데일대 3)을 대견한 듯 바라보며 얘기했다. 그는 “꽹과리를 칠 때면 팔이 아프다가도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힘이 솟아 난다”며 “이게 팝에서 느낄 수 없는 한국 음악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재미동포 2세인 그의 모국어는 ‘신명’을 이해할 만큼 충분하지 못했지만 그의 몸은 이미 한국 전통음악의 진수를 이해하고 있었다.
대부분 아이들에게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사물놀이 설장고 북춤 부채춤 등 한국 음악과 무용을 한 가지씩 몸에 익히고 있다. 이들이 한국 청소년들에게도 낯선 우리 전통 가락과 춤사위를 몸에 익힐 수 있었던 것은 한국국악협회 미동부지회 박수연(46ㆍ여) 회장 덕분이다.
박 회장은 1992년 한국에 잠깐 들렀다가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입양돼 가는 아이 둘을 만났다. 13시간 동안 한 순간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 모습에 어찌나 가슴이 아팠던지 비행기에서 내린 뒤에도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박 회장은 한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입양아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무형문화재 이매방류 승무와 살풀이춤 전수자인 박 회장은 자신이 배운 한국의 전통문화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10여년 동안 수백 명의 입양아와 재미동포 2ㆍ3세들에게 한국의 노래와 춤을 가르치고 입양부모 단체가 주최하는 캠프를 찾아 다니며 공연을 했다.
박 회장은 “아이들이 국악에 관심을 가질까 걱정도 했는데 정말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가 더 기뻤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그래서 이번에 아이들을 데리고 고국에서 국악의 향기에 취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입양아 로렌 커틴(20ㆍ여ㆍ델라웨어대 2)은 “학교에 가면 남들과 다른 내 모습에 고민한 적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한국에서 온 친구들과 어울려 장구를 치면 마음이 편해졌다”며 “내 나라에 오니 내 피부색과 내 머리색이 이제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7일 국악원에서 연수를 시작한 아이들은 18일까지 각종 국악기 연주와 전통춤을 연습하고 한국의 멋이 살아 있는 남도 이곳저곳을 돌아볼 예정이다. 국악원을 찾는 진도지역 어린이들에게 매일 1시간씩 영어를 가르치며 대화하는 시간도 갖는다. 연수 마지막날인 18일 밤 국악원의 금요상설무대는 미국에서 찾아온 어린 국악인 16명의 무대로 꾸며진다.
진도=글ㆍ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