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경제부 유병률 기자가 쓴 '서른살 경제학'을 보면 '길거리 경제학이 진짜 경제학이다'라는 항목이 나온다. 정부나 전문가들은 생산 소비 투자 수출 고용 금리 등 갖가지 난해한 지표를 들이대며 경기논쟁을 벌이지만, 일반인들은 일상적인 삶에서 경제상황을 훨씬 간결하고 명확하게 파악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기업하는 친구의 술자리 얘기나 씀씀이, 택시 기사의 운전매너와 푸념, 서울 근교 등산객 수, 백화점의 남성정장 판매량, 인터넷의 포장마차 경매가격, 성형외과와 치과 환자 수 등을 보며 자신만의 경기 독해법을 키우라고 권한다.
▦흥미로운 것은 경기판단의 잣대로 여성의 소비패턴과 패션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린스펀은 브래지어가 얼마나 팔리는지 잘 지켜봐야 한다'고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충고한 것과 백화점 직원들이 립스틱 판매량을 늘 주의깊게 살핀다는 얘기는 즐겨 인용되는 일화다.
경기가 나빠져 지갑이 가벼워지면 비싼 겉옷이나 화장품 대신 상대적으로 값싼 속옷과 립스틱 판매가 늘어난다는 경험칙의 산물이다. 여성들의 보상심리에 주목한 이 가설은 페미니스트적 관점에서 종종 비판받지만 추세를 읽는 도구로 쓰임새가 있다.
▦사람들의 관심을 자극하는 것은 여성의 치마 길이, 특히 미니스커트의 유행 여부로 경기를 판단하는 이론이다. 호사가적 취미를 가진 미국의 한 경제학자가 주가와 스커트 길이와의 상관관계를 조사해 본 것에서 출발한 이 주장은 말만 이론일 뿐, 명확하게 검증된 것은 아니다.
살기 힘들어질수록 여성들은 우울하고 답답한 분위기에 빠지기보다 자신을 발랄하게 돋보이고 싶은 욕구를 더 강하게 표출한다는 줄거리가 얘기의 전부다. 반면 불황일수록 치마가 더 길어진다는 실증적 연구도 있으니 애초부터 정설은 없는 셈이다.
▦여당이 나서 재계에 포옹공세를 퍼부어야 할 만큼 민생고가 문제되는 요즘, 미니스커트 업계는 콧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인터넷 쇼핑몰과 로드숍 등의 미니스커트 판매량이 예년에 비해 많게는 3배까지 늘었기 때문이다.
과거 장발과 함께 미니스커트가 경범죄 단속대상이 됐을 때는 무릎 위 몇 ㎝니 했지만 이젠 총 길이가 20㎝에 불과한 아찔한 제품도 심심찮게 팔린다고 한다. 대담하고 경쾌하게 살고픈 도전의욕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폭염의 시기에 입어서 즐겁고 봐서 시원한 일이 하나의 세태가 된 것은 좋지만, 경기를 관리하는 관료들에겐 결코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길거리 경제학이 맞다면.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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