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인사권이 도전을 받고 있다. 청와대가 밀어붙인 김병준 카드가 실패한 데 이어 문재인 카드도 고전하고 있다. 이번 사태에 특이한 점이 있다면 열린우리당이 노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고 나왔다는 사실이다. 청와대도 불만을 토로한 것처럼 여당답지 못한 열린우리당의 모습이다.
김병준 부총리의 경우는 야당보다도 더욱 거세게 몰아붙였던 것이다. 그동안 일편단심으로 정부를 감싸왔는데 그 모습이 백팔십도 바뀌니, 소회가 야릇하다. 대통령의 인사권은 대통령의 마지막 권한이라고 절규하는 청와대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카드는 안 된다고 선을 긋고 나왔던 모습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대통령을 공격함으로써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의도였을까.
헌신적이고 희생정신을 가진 젊은 사람에 대해 "요즈음 젊은이 같지 않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정상적으로 말하자면 요즈음 젊은이다운 맛이 있어야 한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약삭빠르고 즉흥적이며 기분에 좌우되는 젊은이가 많다 보니 대견스러워 그런 생뚱맞은 표현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아냥이 아니라 칭찬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 여당이 "예전 여당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만 있다면, 그것은 고무적인 조짐이다. 물론 이처럼 행태가 변한 데는 곡절이 있을 것이다. 최근만 하더라도 정부ㆍ여당은 길지도 않은 두 달 사이에 참패를 했다. 또 그동안 성적도 최악이다.
2004년 탄핵 역풍으로 대승을 한 것을 처음이고 마지막으로 과반수 의석을 가진 여당답지 않게 연전연패함으로써 추풍낙엽이 됐다. 그 이유는 성실하게 살아온 많은 사람을 적대시하는 정부의 징벌적 개혁정책을 교정하는 데 힘을 쏟기는커녕, 지원하고 동조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늦게라도 정신을 차리고 있는 셈인가.
지금 청와대는 대통령 인사권 간섭에 대해 격앙되어있다. 그러나 문제가 된 것은 '왕의 남자'로 불리는 대통령의 측근들을 자리만 바꾸어가며 돌려쓰는 회전문 인사였기 때문이다.
'왕의 남자'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남자'를 썼다면 왜 그런 비판에 직면했겠는가. 노무현정부는 다른 정부보다 엄격한 인사검증시스템을 완비해 놓았다고 자랑해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왕의 남자'를 쓸 때마다 시스템은 엉망이 됐다. 그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인사검증시스템이 잘 돌아가려면 '편한 남자'가 아닌 '최상의 남자'를 써야 한다. 인사권자가 미리 점지하는 경우처럼, 팔이 안으로 굽고 있는데 무슨 수로 엄정하게 사람을 검증한단 말인가.
또 코드인사나 회전문 인사, 낙하산 인사가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게 되면 전가의 보도처럼 대통령과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을 써야 한다고 강변해왔다. 하지만 '동종교배(同種交配)'가 나쁘다는 사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만 쓰면 '집단적 사고'라는 함정에 빠져 중요한 것을 볼 수 없다는 점을 청와대만 모른단 말인가.
국민들의 요구는 인사권이 대통령의 고유 권한임을 부인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권한을 민심에 맞추어 사용하라는 것이다. 두 번에 걸친 참패는 열린우리당뿐만 아니라 청와대에도 중요한 메시지로 다가가야 한다. 엄청난 선거참패가 있었는데도 그런 참패가 없었던 것처럼 전과 다름없이 인사권을 행사하려 한다면 책임 있는 정부는 될 수 없다.
박효종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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