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마치 김기덕의 제사 자리처럼 느껴집니다. 한국 관객은 앞으로 제 영화를 어떤 형식으로든 볼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베를린 영화제와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이 국내 활동의 잠정적인 중단을 선언했다. 김 감독은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관철동 스폰지 하우스 극장에서 열린 ‘시간’(24일 개봉) 시사회를 마친 직후 국내 예술 감독으로서의 어려운 입장을 격정적으로 토로하며 이 같이 밝혔다.
그는 “13편의 영화를 만드는 동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회고하며 “2004년 ‘빈집’이 흥행에 실패한 후 제 영화를 국내 개봉하지 않을 것을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활’이 개봉 1주일도 안 되어 상영이 중단된 후, 더욱 이런 마음을 굳혔다”고 덧붙였다. “꼭 관객 숫자에 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관객들의 제 영화에 대한 이해에서 어떤 부가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전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제 영화가 한국 사회와 관객들에게 어떤 가치가 있든 제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일본 자본으로 만들어진 ‘시간’의 국내 상영은 20개국에 수출된 것과 다르지 않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그는 또 “국내 영화제에도 자신의 작품을 출품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협박으로 들어도 어쩔 수 없고, 하소연이나 불만으로 들어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자신의 선택이 감독 생활의 장애물이 될 것이라는 점도 그는 인정했다.
그는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감독을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이며 그 땐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이 모든 것이 제 성격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에 대해 자문자답하고 있습니다. 지금 차기작을 준비하는 게 없고, 아무 생각도 없습니다. 그 동안 제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어떤 대답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말미에 ‘시간’이 국내 관객과의 교감에 성공하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래도 20만 명의 관객이 보기를 희망합니다.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는 20만명이 넘게 제 영화를 봤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의 제 생각이 바뀔 수도 있겠죠.”
한편 김 감독은 ‘괴물’의 흥행 질주에 대해서는 “가장 피 흘리는 감독으로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현재 한국영화 수준과 관객 수준이 만나 만들어 낸 최정점의 결과물로 본다”고 평가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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