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의 여름 집중 수행인 하안거(夏安居)가 8일(음력 7월 15일) 끝났다. 안거는 여름과 겨울 석 달 동안 절 문을 나서지 않은 채 참선과 수행에만 정진하는 행사다. 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에 따르면 음력 4월 15일부터 시작한 이번 하안거에는 전국 94개 선원에서 2,219명의 스님이 참여했다.
이날 오전 9시, 충남 예산 덕숭총림의 수덕사 대웅전에서 열린 하안거 해제(解制) 법회에는 산내 암자인 보덕사, 능인선원, 견성암에서 하안거를 한 스님과 신도들이 모였다. 이 자리에서 덕숭총림 방장 원담(圓潭·80ㆍ사진) 스님은 수좌인 설정(雪靖) 스님이 대신 읽은 법문에서 “해제했다고 방심하지 말라. 해제란 생사를 영원히 끊어야만 해제이니, 오늘이 다시 시작하는 날이라 생각하고, 발심해서 새로운 결제를 단단히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법회를 마친 스님들은 저마다 걸망을 메고 만행길에 올랐다. 그 일행 가운데 베스트셀러 ‘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로 잘 알려진 미국인 현각스님이 눈에 띄었다. 능인선원에서 하안거 동안 하루 다섯 번씩 108배를 했다는 그는 공부 많이 하셨냐는 질문에 ‘쬐금’이라고 쑥스러워하면서 “그동안 내가 해온 공부가 엉터리였고,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능인선원은 덕숭총림을 대표하는 비구 선원이다.
이번 하안거를 이끈 설정스님은 전날 저녁 기자들을 만나 하안거 풍경과 수행 이야기를 들려줬다. 스님은 “덕숭총림은 구한말 경허스님이 다 끊어져가던 선풍을 일으키고, 만공, 혜월 등 큰 스님들이 그 뒤를 이어 선을 중흥시킨 곳”이라며 “전국 사찰의 조실, 방장 스님 치고 이곳 능인선원을 안 거친 이가 없을 만큼 역사와 전통이 깊다”고 소개했다.
“규율이 매우 엄격하면서도 자유로운 것이 덕숭총림의 특징입니다. 여기 오는 스님들은 10~30년씩 화두를 들고 수행해온 분들이라 죽비를 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공부를 합니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채소 기르고 풀 베는 등 노동을 강조하는 것도 여기 전통이지요.
안거 중 스님들 모습은 살얼음판 같아요. 크게 웃고 떠드는 것은 금지돼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죽을 일이 아니면 절대 밖에 못 나가고, 말을 많이 해선 안 되고, 음식은 아무 때나 못 먹고…. 석 달 간 신문, 잡지, 라디오, TV, 휴대폰도 금합니다. 이번 능인선원 하안거에는 스물 다섯 분이 참여했는데, 딱 한 분, 세르비아 출신 외국인 스님이 장이 녹아내리는 큰 탈이 나서 중도에 빠지셨습니다. 참선하고 앉은 방석에 피가 흥건히 고이도록 고통을 말하지 않고 견디다가 결국 수술을 받으셨지요.”
왜 이토록 치열하게 수행하는 것일까. 스님은 “수영을 못 하는 사람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수는 없다”며 “안거는 세상을 팽개치는 것이 아니라 중생을 구제할 지혜를 얻기 위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수행과 선의 본질을 일러주는 ‘철수개화’(鐵樹開花)와 ‘화중생련’(火中生蓮)이란 말을 숙제처럼 던졌다. “쇠나무에 꽃이 피고 불 가운데 연꽃이 피는 도리가 불법 가운데 있습니다, 그것이 선입니다.”
그 날이 언제일까. 하안거를 마치고 산문을 나서는 스님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런 질문이 일어났다. 수행은 스님들만의 몫은 아닐 것이므로.
예산=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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