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수재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북한 당국이 지난달 19일 발표한 피해규모는 사망ㆍ실종자 수백명. 또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 인터넷판에 따르면 사망자 549명, 실종자 295명, 부상자 3,043명이다. 사망ㆍ실종자가 1만~2만명이라는 얘기도 민간단체와 언론을 통해 흘러나온다.
그런데 피해규모와 관련해 눈 여겨 볼 것이 있다. 남한에서도 지난달 7~29일 기록적인 장맛비가 내렸지만 사망ㆍ실종자가 63명으로 북한보다 훨씬 적었다는 점이다. 이 기간 남한에 내린 비의 양은 강원 홍천군 1,208㎜, 충북 제천시 1,024㎜, 서울 990㎜ 등으로 북한보다 오히려 많았다.
지난달 14~16일 평안남도 양덕군 485㎜. 황해남도 해주시 366㎜, 평양 227㎜의 비가 왔고 지난달 10,11일 북한 전역에 200㎜의 폭우가 쏟아졌다. 집중호우 기간 이외의 비의 양을 충분히 고려하더라도 북한의 지난달 강수량은 800~900㎜를 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데도 북한의 피해가 남한보다 컸던 것은 왜 일까. 바로 재해 투자와 사전ㆍ사후 대책의 부재 때문이라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남한과 북한의 재해예방비 격차는 10배 이상이다. 하수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북한에서는 넘친 빗물이 바로 거주지와 농경지로 스며든다. 댐과 저수지도 남한 수준에 크게 못 미쳐 홍수조절을 거의 못한다.
남한의 기상청은 슈퍼컴퓨터를 보유하고 있는 등 장비가 선진국 수준이지만 북한의 기상장비는 남한의 1980,90년대 수준이어서 예보능력이 크게 떨어진다. 남한에는 휴대폰을 통한 문자재해방송 등 첨단 재난통보 시스템이 있지만 북한의 경우 방송이 전부다.
사후 대책은 더 한심하다. 남한은 재해 직후 중장비를 투입하는 데 반해 북한은 아직 삽으로 해결한다. 남한에는 동네마다 있는 119구조대도 북한에는 없다. 방역을 위한 약재 투입이 필수적이나 북한에서 이런 약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쌀 지원을 중단했던 정부는 민간단체와 여야의 요구에 따라 '대북 수해 지원 품목'에 쌀을 포함하기로 했다. 인도적 차원에서 일시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당장 동포가 굶어 죽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쌀을 현물로 보내는 현재의 지원 방식은 아무래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느낌이다. 선군정치를 표방하며 모든 예산을 군사비에 쏟아 붓는 북한 정권이 재해 부문에 투자하고 변변한 재해 대책을 세울 리 없어 수재는 향후에도 되풀이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 쌀 지원을 본격적으로 재개할 때 북한 재해 투자 증액 프로그램의 도입을 검토해보면 어떨까 한다. 쌀 지원량을 상당폭 줄이고 나머지 예산을 북한에 재해대책비로 제공하자는 것이다. 나아가 남한이 제공한 액수 만큼 북한도 재해 투자를 하도록 요구한다. 북한이 저항하겠지만 장기적으로 식량증산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면 설득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의 도입을 위해서는 남한의 재해 공무원을 북한에 고문으로 파견해야 한다. 재해 대책을 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공무원은 재해대책비가 엉뚱한 곳으로 새지 않도록 감시하는 역할도 한다.
고기를 주기보다는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줘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가 쌀 지원 문제 만큼 정확히 적용되는 경우도 없는 것 같다.
이은호 사회부 차장대우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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