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관행(50) 전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엘리트 집단으로 대표되는 판사들 중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초엘리트 판사’로 꼽혀왔다. 그의 24년간 판사 인생은 승승장구의 연속이었다.
1979년 서울대 법대를 나와 이듬해 사법시험(22회)에 합격한 조씨는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곧장 서울민사지법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초임을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발령 받기 위해서는 사법연수원 성적이 10위 안에 들어야 했다.
초기 10년 가운데 무려 8년을 서울에서만 판사 생활을 한 그는 미국 예일대에서 잠시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뒤 동기들 중 선두 주자에게만 자리가 주어진다는 대법원 재판연구관직을 꿰찼다. 2002년부터 2년간 법원을 대표해 언론중재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그의 판사 생활의 클라이맥스는 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로의 초고속 승진이다. 조씨는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로 있으면서 ‘담배소송’ 등 굵직한 사건들을 처리하다가 지난해 2월 대전고법 수석부장판사로 임명됐다.
차관급인 고등법원 부장판사 중에서도 으뜸이라 할 수 있는 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가 된 것이다. 지방법원 부장판사가 바로 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로 발령 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실패를 모르며 출세길을 달려온 그였던 만큼 ‘한순간의 영락(零落)’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김홍수씨 사건이 터진 뒤에도 판사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던 듯 주위의 사퇴 권유를 뿌리쳤다.
하지만 지난달 중순 김씨를 돈으로 회유하려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달 4일 사표를 제출했다. 그는 8일 후배 법관인 이상주 서울중앙지법 영장담당판사 앞에서 구속 여부를 심리받는 굴욕을 받으면서도 검찰 수사의 부당성과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무위로 끝났다. 9일 새벽 구속영장 집행을 받은 그는 자신이 실형을 선고한 피고인들과 함께 수감생활을 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김지성 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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