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결국 문재인 법무장관 카드를 접었다. 반대하는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을 향해 “내게 권력투쟁하자는 거냐”며 감정적으로 폭발했던 노 대통령이 막판에 한 발 물러섰다. 지난 6일 당청회동을 통한 ‘봉합’ 후로도 이틀이 지나서다.
노 대통령은 밀어붙일 경우 득보다 실이 크다고 판단했다. 여당이 “정치적 결별도 불사한다”며 배수진을 친 마당에 헤어지기로 작정하지 않은 이상 문재인 카드를 고집하기가 힘들었다. 인사문제를 둘러싼 여권의 자중지란은 레임덕으로 이어진다. 노 대통령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이다. 북한 미사일 발사에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논란, 김병준 교육부총리 교체 등 안팎으로 난제가 쌓여 소모적인 내부투쟁에 매달릴 여력이 없기도 했다. 문 전 수석도 “국정운영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며 고사했다.
유시민 복지장관 임명과 이해찬 총리 경질과정 등에서 줄곧 비판적 여론몰이를 해온 당지도부로부터 ‘인사권은 대통령 고유권한’이란 다짐을 받아낸 당청회동도 적잖이 영향을 미쳤다. 수세적 입장에서 벗어나 당정주도권을 확보했다는 자신감이 당의 요구를 수용하는 포용적 태도로 나타났다.
노 대통령의 선회를 두고 당에서는 “국정운영 스타일도 변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자존심 강하고 밀릴수록 타협보다는 오히려 승부수를 던져버리는 노 대통령의 역발상 정치에 속앓이를 해온 우리당의 기대가 담겨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태도를 바꾼 것은 당에 대한 배려라기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필요성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
당청갈등의 불씨가 꺼지긴 했지만 상호신뢰가 깨진 것은 두고두고 부담이다. 양측은 김병준 교육부총리 사태에 이어 문 전 수석 파동을 겪으며 감정적으로 잊기 힘든 상처를 입었다. 노 대통령은 “20% 지지를 받는다고 날 무시하느냐”고 날을 세웠고 당직자들은 회동 뒤 “도저히 대화가 안 된다”며 앙금을 드러냈다.
더 큰 문제는 양측의 지향점이 달라 항구적 긴장관계가 형성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우리당은 대선승리가 목표지만, 노 대통령은 성공적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무리하길 바란다. 양측은 서로의 목표에 여전히 상대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지금처럼 티격태격하면서도 절충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서로를 걸림돌로 인식하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선이 임박할수록 그럴 여지가 커진다. 특히 우리당은 당 지지율이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으면 그 탓을 노 대통령에게 돌리며 본격적인 차별화를 시도할 것이다. 물러서지 않으려는 노 대통령과의 정면충돌은 물론 당내 갈등도 불가피하다.
이동국 기자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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