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친구는 호리호리한 미녀다. 캐주얼 차림밖에 못 봤지만, 이브닝 드레스도 사파리 복장도 잘 어울릴 것 같다. 몇 년 전, 그녀는 유럽을 다녀왔다. 배낭을 메고 혼자 유스호스텔을 찾아 묵으며 다니는 여행이었다.
그 여행을 위해 그녀는 2년간 열심히 아르바이트 한 돈을 저축했다. 내 기억으로는 두 달 예정이었는데, 살뜰히 꾸려서 한 달 더 외유를 늘렸던 것 같다. 그때 그녀의 여행 선물로 미니어처 로제타석을 받았다.
런던의 대영박물관에서 골랐다고 했다. 원래 로제타석은 검은빛 섬록암인데, 이것은 감촉이 부드러운 상아빛 대리석이다. 거기 새겨진 고대 이집트 문자는 무슨 뜻을 가진 문장의 한 조각일까? 모르긴 해도, 인간이 아니라 신을 향한 말일 것이다.
그녀는 자전거를 굉장히 잘 탄다. 로마에서도 마드리드에서도, 머무는 고장에서마다 자전거를 빌려 타고 다녔다고 했다. 어느 날, 약속 장소인 서교동 버스 정류장에 그녀가 자전거를 타고 나타났다.
그리고 나더러 뒤에 타라고 했다. 나는 혼잡한 거리와 호리호리한 자전거를 번갈아 보며 고개를 저었지만 그녀는 유유했다. 그녀의 자전거 뒤에 실린 채 "괜찮아? 괜찮아?" 겁에 질려 소리치다 보니 마포였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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