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떠오르는 아버지의 젊은 시절 모습은 낡은 책장에서 이광수의 소설을 꺼내어 읽고 또 읽던 장면이다. 하도 많이 펼쳐봐서 표지가 너덜너덜해지고 누렇게 변색된 그 책을 버리지 않고 끝내 간직하신 이유를 감히 여쭤보지는 못했지만, 그 책에 간직된 젊은 날의 꿈과 추억을 저버리지 못하셨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렇게 책 읽기를 좋아하셨음에도 살기도 빠듯한 어려운 형편에 새로운 책을 사보시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짐작했다.
내가 글을 깨우치고 책과 친해지기 시작할 무렵 아버지는 당시로서는 꽤 큰돈을 들여 한국 위인전 한 질을 사주셨다. 반짝 반짝한 새 책들이 집에 들어오던 날, 아버지는 내게 말씀하셨다. “남아수독 오거서야.” 도무지 그 뜻을 헤아릴 수 없는 내게 “남자란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아버지께서 길들여주신 책읽는 습관은 내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비록 지금까지 살면서 다섯 수레분의 책을 읽지는 못했지만, 책을 통해서 사람다운 사람이 되었는지 역시 알 수 없지만, 무용을 전공하던 내가 연기자로 변신하는데 책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책에서 얻은 간접 경험이 없었다면, 책 속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나지 않았다면, ‘인간 시장’의 장총찬이나 ‘여명의 눈동자’에서 장하림 역을 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책은 내 연기에 영감을 주는 밑천이었다.
점점 책을 집어 들기가 어려워진다. 연기자로서의 불규칙적이고 번잡한 일상이 독서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독서하면서 생각하고 분석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국민이 책과 마주하는 시간이 주당 3.1시간으로 조사 대상국 30개국 가운데 최하위이며, 도서 관련 인프라 시설이 개발 도상국 수준에도 못 미친다는 때마침의 발표는 나만 책과 멀리 산 게 아니었구나라는 위안과 변명의 호기를 주기까지 한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위안을 받을 일이 아니다. IT의 황제 빌게이츠 조차도 컴퓨터가 책을 대체하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왜냐하면 IT로 대변되는 최첨단 기술은 책을 통하여 영혼을 살찌우고 생각의 지평을 넓힌 사람들에 의해 개발되었고, 앞으로의 기술 발전도 책을 통하여 길러진 사고력, 분석력, 창조력에 의하여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기술과 문화의 발전에 측면에서 세계 초일류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사상의 기반을 이루는 독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독서를 권장해야 할 것이며, 독서에 필수적인 인프라 시설인 도서관 시설 확충에 힘써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시점에서 ‘2006 서울 세계 도서관 정보 대회’가 한국에서 열린다는 소식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으며 더욱이 나는 영광스럽게도 홍보 대사로 지명되었다. 이번 대회를 통하여 우리나라가 온 국민의 독서 열풍을 주도할 도서관 시설을 선진국 수준으로 확충하는 계기를 맞게 되길 바라며, 나 또한 홍보 대사로서 최선을 다하여 우리나라 도서관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리라 굳게 다짐한다.
탤런트 박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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