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땡볕, 밤에는 열대야가 연일 이어지면서 ‘대한민국의 잠 못 이루는 밤’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산과 바다는 물론 공원과 대형할인점 등에는 무더위와의 싸움에 지친 시민들의 발길이 깊은 밤에도 끊이지 않고 있다. 자연이든 에어컨이든 한줄기 바람에 목마른 이들은 저마다 집안탈출 행렬에 나서고 있다.
시원한 분수와 폭포수가 폭염을 식혀주는 청계천에는 5일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도심 피서’를 즐기려는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회사원 이모(42)씨는 “야간 조명도 볼 만한데다 오색의 분수를 바라보다 보면 더위를 잊게 된다”며 “가족들과의 외출 겸 피서로 안성맞춤”이라고 말했다.
땡볕과 열대야는 쉽게 물러날 태세가 아니다. 기상청은 4일 “장마가 끝난 후 덥고 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이 확장해 지난달 28일부터 전국적으로 열대야가 지속되고 있다”며 “9월 10일까지는 무더위가 이어져 9월 초순에도 열대야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100년만의 무더위’라고 호들갑을 떨었던 지난해 보다 더 찜통더위인 셈이다.
낮에 달궈질 대로 달궈진 땅이 밤에도 식지 않아 하루종일 기온이 25도를 웃도는 열대야는 우리 삶의 모습을 바꿔놓고 있다.
‘올빼미 쇼핑족’은 이미 구문이다. 잠 못 이뤄 뒤척일 바에야 쾌적한 온도 속에 쇼핑을 즐기는 게 낫기 때문이다. 아예 더위에 맞서 찜질방과 헬스클럽을 찾는 사람도 적지 않다. 공포영화를 상영하는 심야영화관도 인기다. CGV 관계자는 “열대야가 시작되면서 주말 관객이 35.8% 늘었다”고 말했다. 김모(35)씨는 밤이 되면 습관처럼 집 근처 한강 둔치를 찾는다. 김씨는 “에어컨이나 선풍기보다는 자연바람을 쐬는 게 건강에도 좋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빙과류와 에어컨 업계는 물건 대기에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해태제과는 빙과류 주문이 지난달보다 50% 이상 늘어 생산라인을 ‘풀 가동’하고 있다. LG전자는 지난달 말 에어컨 생산을 끝냈지만 혹서로 주문이 밀려들자 이달 말까지 연장 생산키로 했다.
혹서로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도 벌어지고 있다. 3일 오후 전남 나주시 세지면에서 땡볕 아래 농사일을 하던 정모(62ㆍ여)씨가 쓰러져 목숨을 잃었다. 같은 날 경기 여주군의 허모(70)씨도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다 일사병 증세를 보이며 쓰러져 중태에 빠졌다. 보건 관계자는 “일사병 증세가 나타나면 곧바로 환자를 서늘한 곳으로 옮겨 옷을 풀어주고 시원한 바람을 쐬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4일에도 경북 의성의 낮 최고기온이 37.0도로 올해 최고 기온을 기록했으며 영천 36.4도, 합천 36.4도, 진주 35.8도, 대구 36.7도, 전주 36.4도 등 남부지방은 찜통이었다. 서울도 올들어 최고인 34.7도를 기록했다.
폭염을 탈출하기 위한 행렬은 이번 주말 절정을 이룰 전망이다. 한국도로
공사는 5, 6일 서울을 빠져나가는 차량이 평소보다 6만대 정도 많은 68만
여대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동해안과 서해안으로 가는 영동과 서해
안 고속도로가 많이 막힐 것으로 예상되며, 본격적인 정체는 5일 오전 6시
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박원기 기자 on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