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영혼을 사랑했습니다. 오, 우리들의 고통에 함께 피를 흘렸던 동지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혁명의 여인 엘리노어 마르크스에게 어느 시인이 바친 시다. 단 한 번 만났을 뿐인 사람에게 저 같은 영감을 불어 넣은 사람. 공산주의의 아버지, 칼 마르크스의 딸이 바로 그녀다. 1855년부터 1898년까지, 길지는 않지만 백열처럼 타올랐던 그녀의 삶과 사상을 처음으로 집대성한 책이다.
그는 칼 마르크스의 세 딸 중 유일한 혁명 전사였다. 마르크스주의 인터내셔널이 부활로 난립해 있던 사회주의 단체들이 별 탈 없이 교섭과 협의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녀의 헌신 덕분이었다. 체면을 중시하던 당시 영국 사회의 온갖 문제들과 싸워 나가는 모습이 책의 전편을 장식하는데, 유부남이었던 남자와 연애하고 결혼했지만 결국 그 때문에 파멸해야 했던 여인에게 부과된 하중은 여느 소설이 감당할 바가 못된다.
현재 히도츠바시 대학 교수인 저자가 영국 옥스포드 대학 유학 시절, 도처에 있던 엘리노어의 편지, 일기, 갖가지 메모 등을 수집ㆍ정리해 박사 학위 논문으로 제출했던 것이 1960년대 후반. 이어 논문은 옥스포드 대학 출판부가 ‘엘리노어 마르크스:1855~1898, 어느 사회주의자의 비극’이란 제목으로 펴냈고, BBC 방송이 제작한 다큐멘터리로 이어졌다. 80년대 초반 일본의 미쓰즈 서방(書房)에서 출판됐다.
생일 때 선물을 보내지 않은 엥겔스에게 “밤새도록 술만 마셔대느라 잊어버렸을 것”이라며 편지를 띄우곤 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 등 이 책은 격동의 한가운데를 걸어 간 사람들이 일궈내던 일상의 모습도 덤으로 보여준다. 극도의 생활고 속에서 아이마저 병마로 앗기는 고통을 겪지만, “인색하고 하찮은 부르주아적 투쟁”을 헤치고 가는 마르크스 일가의 생생한 모습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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