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경북 성주군 금수면에서 열린 ‘2006 금수 1인극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폐교 운동장에 대를 베어다 얼기설기 장막을 치고 자리 한 장을 깐 놀이 마당 위에 풍물과 인형극, 춤, 난장, 소리, 마임이 올랐다. 교실을 소극장으로 개조한 자리에는 모노드라마 한 편이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했다(‘염쟁이 유씨’). ‘숲? 짓? 삶’이라는 기치 아래 3일 동안 지역 주민과 이방의 관객들을 모은 이 연극제는 주최측이 국수 말아 먹이며, 탁주도 한 순배씩 돌린 축제의 자리였다.
연극이 극장을 박차고 나가 천막, 폐교, 숲 등지에서 풍찬노숙을 마다 않은 데는 그 배경이 있다. 근대 이후 한국 연극은 극장의 액자틀 속에 자신을 단정히 가두라는 서구 연극의 미학을 수련함과 동시에, 관객을 개발한다는 두 마리 토끼를 좇아 왔다. 이 와중에 신명과 풍자의 정신이 사라지게 됐다.
단절 위기의 전통극 미학을 적극적으로 재발견한 것은 민족극 진영이다. 이들은 삶과 노동의 밀착감, 실내에 가둘 수 없는 우리 전통 극 유산의 펄펄 뛰는 기운에 주목하고 ‘민족극’이라는 기치 아래 정치적 압제와 사회적 억압에 대항하는 마당극 양식을 내놓았다. 1990년대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자 투쟁의 현장에서 일상의 장, 문화 운동으로 역량을 옮겨 왔다. 참여 정부 출범 이래 다원화한 문화 예술 지원 정책 및 지방 자치제의 물살을 타고, 일찍이 연극의 축제성에 눈뜬 민족극 계열은 지역 축제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모는 자칫 상품성을 의식한 기획의 틀 안에 마당극을 가둔 채 문화 정책 지원의 온실 속에 안주하거나, 또 다른 문화 상품화 과정에 따르는 창작 역량의 반복적 재생산 쪽으로 안착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번 ‘금수 1인극 페스티벌’에서 목도한 게 바로 그러한 우려였다.
이미 만들어진 완제품 공연들을 초청하거나, 습작에 가까운 작품들로 구성한 이번 축제는 주최측의 창조 역량, 자생적 문화 생산 능력을 회의하게 했다. 지역 주민의 참여 및 연희 집단과의 정서적 유대감 또한 의무 방어 수준을 넘지 못했다. 여전히 연극은 삶과 노동 현장 바깥에 있었다.
역시, 완성도 있는 레퍼토리 창작과 개발이 급선무다. 일상 대 문화, 마당 대 극장, 노동 대 축제, 연극 대 정치 등의 단절을 극복하고자 한 민족극의 초심이 문화 예술의 마당 안에서 뚜렷한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도.
6일까지 열리는 ‘전국 민족극 한마당 2006 성주 밖 숲 축제’에서 만날 마당극들은, 연극이 극장을 나와 숲으로 간 까닭을 제대로 짚어주는 대안의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극작ㆍ연극평론가 장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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