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한 사병을 전장에서 격리시켜 집으로 돌려 보내기 위한 매우 특별한 작전을 다룬 영화다. 2차 대전 막바지 미 국방부는 전사자 통보업무를 처리하면서 한 집안의 4형제가 유럽전선에 배치돼 며칠 간격으로 3명이 전사하고 막내만 프랑스 전선에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 막내 제임스 라이언 일병을 귀향시키라는 작전지시를 내린다.
작전에 투입된 8명은 단 한 명의 생명이 8명의 생명보다 더 가치 있는가 하는 의문으로 갈등과 혼란을 겪지만 독일군 포위망에 고립된 라이언 일병을 극적으로 구출해낸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탁월한 전쟁 묘사로 극찬을 받았지만 큰 흐름은 미국적 애국심과 희생정신이다. 한 명의 병사를 구하기 위해 8명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은 유보한 채, 미국은 단 한 명의 국민을 위해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한다.
미국이 한국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지났는데도 전사한 미군 유해 찾기를 중단하지 않는 이유는 유가족에게 유해라도 되돌려 주겠다는 도의적 책임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미국은 적국에서라도 자국민의 유해 찾기를 포기하지 않을 정도로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성 때문이 아닐까. 모래알같은 다인종 국가가 애국심과 단결력을 고취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을 듯 싶다.
● 미 유해발굴 계속하는 까닭
참치잡이 원양어선 제628 동원호가 아프리카 서부 소말리아 인근에서 해적에 납치된 지 117일 만에 풀려났다. 한국인 선원 8명을 포함한 25명의 억류생활은 용감한 한 프리랜서 PD의 현지 취재로 낱낱이 공개됐다.
그들은 언제 풀려날지 기약 없이 히스테릭한 해적들의 총부리 앞에서 지옥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외교통상부와 선사의 막후교섭 내용을 알 리 없는 선원들이 정부의 무관심을 원망하는 것은 당연했다. 이런 장면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분노 또한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납치된 선원 모두 무사히 풀려난 것은 천만 다행이다. 선원들의 석방은 외교통상부와 동원수산 측이 인내심을 갖고 해적들과 피 말리는 협상을 벌인 결과다. 당초 예상과 달리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며 억류기간이 길어지는 상황의 내막을 그대로 밝힐 수 없는 속사정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국민들이 정부가 최선을 다 했는가 하는 점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서방 언론의 특파원이나 현지 언론이 해적들과 피랍 선원들을 직접 취재하고 우리 여성 PD가 현장 취재를 하는 터에 현장 접근이 어렵고 위험해 대면협상이 어려웠다는 외교부의 해명은 설득력이 약하다.
금품을 노린 해적과 직접 교섭할 수 없다는 원칙을 이해하더라도 납치된 선원들과 그 가족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에게 국가가 피랍 선원의 석방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한 것은 분명 정부 잘못이다.
지난달 수해 직후 TV에서 본 장면이 생생하다. 집이 물에 잠기고 도로가 끊겼는데도 관청으로부터 아무런 사전 위험경고나 연락도 받지 못하고 고립돼 있다가 취재기자가 험한 길을 뚫고 나타나자 한 주민이 원망어린 얼굴로 말했다. "대한민국 국민 된 것을 후회합니다" 이 한 마디는 시청자들을 오싹하게 했다.
● 애국심 호소할 마지막 보루
국가의 책무란 거창하고 복잡한 이론을 들 것 없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이다. 헤즈볼라에 납치된 두 명의 자국 병사 석방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레바논의 헤즈볼라 근거지를 무차별 공격하는 이스라엘 식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흉내낼 필요야 없지만 우리 국민의 생명이 위험에 처해 있다면 국가가 최우선으로 나서야 함은 당연하다.
아무리 대통령의 인기가 없고 정부 여당이 제 역할을 못해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만은 포기해선 안 된다. 해적에게 납치된 선원들, 수해를 당한 사람들은 물론 납북자와 국군포로들도 모두 소중한 우리 국민임을 망각해선 안 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에 소홀하고는 애국심과 단결을 호소할 수 없다.
방민준 논설위원실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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