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져 속상했는데…. 신기해요. 아침에 눈을 떠보니 유명해진 거 있죠."
무릇 스포트라이트는 승자의 몫이다. 탈락의 고배(苦杯)를 마신 자는 순식간에 잊혀진다. 그런데 한 영(19ㆍ2006 미스코리아 중국 진)양은 3일 '2006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본선 1차 선발(참가자 61명 중 17명)에서 떨어지고도 웬만한 수상자보다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의 특이한 이력과 '최초'라는 타이틀 덕분이다. 재중동포 한양은 반세기를 맞은 미스코리아 대회의 첫 중국대표 인데다 북한 최고 명문인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학과를 졸업했다. 북한 대학 졸업생이 미스코리아 대회에 참가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관심은 궁금증을 낳는 법이다. 그에 대한 뉴스와 얘기가 오르내리면서 추측도 무성하다. 오해를 풀기 위해 4일 그를 만났다.
●만19세에 김일성대 졸업생?
화려한 무대의상을 벗은 한양은 수다로 무장한 깜찍하고 발랄한 또래 아가씨였다. 유명세가 부담스러운지 "잠을 못자 얼굴이 붓고 머리가 헝클어져 사진이 잘 나올지" 걱정부터 늘어놓았다. 나이와 대학 얘기부터 꺼냈다. 1986년 12월에 태어났다는 그는 "고교 과정을 건너뛰고 대학에 진학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002년 중국의 음악학교(우리나라의 예술고)에 들어갔지만 한족(漢族)의 텃세와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 때문에 적응이 쉽지 않아 5개월 만에 그만뒀다. 북한을 상대로 무역업을 하는 어머니 한연옥(50)씨가 김일성종합대학을 추천했고, 본인도 "우리말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2003년 초 시험을 치렀다.
유학생 자격인 그는 조선어학과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고, 방학도 없이 공부(계절학기)한 덕에 4년 과정을 3년 만에 마치고 2005년 말 조기 졸업했다. 특히 4년 과정 모두 만점인 5점을 받아 지금까지 2명에게만 돌아간 최우등 졸업생의 영예도 안았다고 했다. 어머니 한씨는 "영이가 대학에 들어갈 때 북한에서 공장을 2개 운영하는 등 15년 동안 북한과 인연을 맺은 덕을 많이 봤다"고 털어놓았다.
●못다한 얘기, 못다 보인 끼!
한양은 학력 때문에 "탈북자"라는 오해도 받는다. 하지만 그는 증조부부터 4대째 중국 지린(吉林)성과 랴오닝(遼寧)성에 터를 닦은 재중동포 집안 출신이다. 어머니 한씨가 단둥(丹東)시 인민대회 대표(우리나라의 시의원)를 맡을 정도로 명문가다. 단둥에서 태어난 한양은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한양은 "탈북자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미인 대회에 참가할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꿈은 "보아나 비" 같은 가수다. 3월엔 서울에서 가수 오디션을 받기도 했다. 161.3㎝의 작은 키로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선 건 인생경험을 쌓기 위함이다. 그는 "한달 합숙동안 대학 하나를 졸업한 것만큼 힘들었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북한에 대한 인식은 아쉽다고 했다. 그는 "북한 사람들은 '가을동화' 같은 한국 드라마를 보면 펑펑 울 정도로 순수하다"며 "정치적인 문제는 모르겠지만 세련된 한국 사람들이 소박한 북한을 동포로 여겼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끝으로 특기라는 가수 이수영의 모창을 부탁했더니 손사래를 쳤다. "진정한 프로는 아무데서나 노래를 부르지 않아요. 제 끼를 맘껏 펼칠 날이 오겠죠." 6일 출국하는 그는 다음달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올 참이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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