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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조선의 문화공간' 면앙정·압구정, 주인을 만나 이름을 얻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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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조선의 문화공간' 면앙정·압구정, 주인을 만나 이름을 얻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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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04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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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땅은 인간을 새롭게 눈뜨게 한다. 영혼은 그 공간을 통해 새로운 감성을 만나고, 땅은 고전적 의미에서의 토포스(topos)가 된다. 소동파의 적벽부가 그러했고, 한명회의 압구정이 그러했다. 또 땅은 주인을 만나 이름을 얻는다.

기림으로 하여 명승이 되고, 사연으로 하여 고적이 된다. 윤선도의 ‘오우가’가 있어 보길도가 빛나고, 송순의 ‘면앙정가’가 있어 면앙정은 아름답다. 그렇게 땅과 사람은 문화를 낳고, 문화는 시간을 타고 이으며 드렁칡 같은 역사를 이룬다.

이종묵 서울대 국문과 교수의 4권 저서 ‘조선의 문화공간’이 출간됐다. ‘조선시대 문인의 땅과 삶에 대한 문화사’라는 부제가 말하듯, 조선 사대부들이 그들의 안목으로 선택한 땅과 교감하며 이룬 삶의 총체, 문화의 총체를 기록한 책이다.

개국에서부터 망국의 그늘이 짙어가던 19세기까지의 500년. 그 거대한 정신과 문화의 대륙을 사대부 87인(또 그들과 교유했던 1,872인의 문인과 학자)의 거처와 흔적을 통해 들여다본다는 발상도 새롭거니와, 그렇게 쓰여진 책은 그 자체로 역사에 대한 새로운 개안(開眼)의 공간을 열어준다.

1권 ‘조선초기-태평성세와 그 균열’은 개국 이후부터 사화와 유배의 시대, 2권 ‘중기-귀거래와 안분’은 사림들의 귀거래와 수양, 풍류의 시기, 3권 ‘중기-나아감과 물러남’은 광해군 이후 영욕의 세월, 4권 ‘조선후기- 내가 좋아 사는 삶’은 18~19세기 문학과 학문 예술을 빛낸 문인ㆍ실학자들의 시대.

서울 종로 자하문을 나서 인왕산 자락을 오르다 보면 ‘무계동’(武溪洞)이라 새겨진 작은 바위가 나타난다.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의 집터다. 꿈 속 풍경을 안견에게 그리게 한 ‘몽유도원도’가 있거니와, 안평은 그 곳이 그 무릉도원과 흡사했던지 ‘무계정사’를 지은 것이다. 책은 이런 사연과 함께 그 공간에서 함께 어울렸던 당대의 시인과 정치가 문장가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안평의 한시 한 수. “으슥한 곳 좋은 일은 깊은 가을에 있으니/ 눈 가득 찬 햇살이 내 마음에 맞구나….”-무계수창(武溪酬唱) 부분.

김안로의 희락당, 정여창의 하동 악양정, 이언정의 독락당, 조식의 지리산과 퇴계의 청량산, 허균의 혁명의 땅 우반동(전북 부안), 잇단 정난에 은거하며 자신만의 소우주를 이룩했던 김수증의 화천 곡운리, 다산의 양수리 소내의 추억….

저자는 1997년부터 꼬박 10년의 주말과 방학을 털어넣어 현장을 찾고 문헌을 읽고 정리해 원고지 6,700매의 글을 썼다. 거기에 권태균씨의 사진 800여 컷을 곁들였다. 책 머리에 그는, 조선 후기 시인 장혼(張混)의 글 한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美不自美 因人而彰) 사람(사대부)이 단지 그 이름을 짓고 알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이념과 풍류, 절조와 비애가 그 땅에 스몄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땅에 그들의 꿈을 투영하고, 땅의 기억은 새로운 꿈을 잉태한다. 마음 속 나만의 공간을 그려보는 꿈! 그 꿈을 위해 저자는 이 글을 썼고, 그 꿈을 공유하고자 책을 냈다고 했다.

‘이것으로 작업이 끝난 것이냐’고 묻자 이 교수는 “어음을 발행하고 싶지는 않지만 시대적으로는 고려, 지리적으로는 북한 땅에 대해서도 작업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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