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전북 완주 모악산 A 수련원 강당. 바깥처럼 푹푹 찌지는 않았지만 80여명의 중학생이 더위 속에서도 ‘경제야 놀자’라는 게임에 흠뻑 빠져있다. 이들은 10명씩 팀을 이뤄 정해진 돈으로 회사를 만들고 물건을 팔아 누가 이익을 가장 많이 내는지를 겨뤘다. 돈을 다루는 재무이사가 가장 중요하다는 강사의 설명에 저마다 그 자리를 맡겠다며 아우성이다.
무리에서 떨어져 앉아 있는 학생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캠프에 처음 참가했다는 수영(가명ㆍ여중1)이는 “처음 보는 사이라 어색하다”고 말했다. 4년 전인 2002년 수영이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됐다. 인테리어 가게를 하던 아버지가 다친 뒤 어머니가 일자리를 찾아 나섰지만 살림은 기울 수밖에 없었다.
결국 좁은 집으로 이사를 가야 했고 생활은 더 힘들어졌다. 수영이는 친구들이 이상한 눈으로 보는 게 싫었다. “엄마한테 왜 우린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며 울고 떼 쓰고 그랬어요”라며 “하지만 지금은 잘 참고 엄마를 도와드리려 애쓰고 있죠”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수영이와 비슷한 처지다. 교통사고로 부모님이 돌아가시거나 많이 다쳐 장애를 입었다. 녹색교통운동은 1995년부터 여름과 겨울방학 때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초중고 학생들을 초청, 3박4일 일정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함께해요! 희망 나눔 여름캠프, 신나는 여름! 하나되는 우리’라는 이름의 이번 캠프는 23번째다. 이번 캠프에는 도로교통안전공단이 동참했고 전국에서 200명 넘는 학생들이 모였다.
한정민 운영팀장은 “경제적, 정신적으로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과 캠프에서 어울리다 보면 ‘아!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구나’며 힘을 얻곤 한다”고 말했다. 그런 까닭에 “처음엔 싫었지만 한 번 오면 계속 오게 된다”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저만치 떨어진 곳에 덩치 큰 두 남학생이 낄낄거리며 뒹굴고 있다. 진정하라는 선생님의 주의에도 마냥 즐거워하는 둘은 마치 친형제 같았다. 그러나 대구에 사는 상진(중2)이와 인천서 온 동건(중1)이는 지난 겨울 캠프에서 처음 만났다. “상진형이 너무 잘 대해준다”는 동건이는 “형이 휴대폰이 있으면 통화도 자주할 텐데 캠프 때만 봐서 아쉽다”고 했다.
5년 전 아버지가 오토바이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상진이는 여동생 수정(중1)이 걱정이 태산이다. “요즘 수정이가 욕도 많이 하고 자꾸 엇나가려 한다”며 “친구들과 어울리면 좀 나아질 까 싶어 싫다는 걸 설득해 같이 왔다”고 말했다.
자원봉사 교사 40명중에는 학생 시절 캠프에 참여했던 이들이 10명이 넘었다.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읜 이미선(여ㆍ25ㆍ회사원)씨도 그 중 하나다. 이씨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게 싫어 방황을 많이 했다”며 “그러나 캠프에서 만난 선생님과 친구들과 나눈 정이 큰 힘이 돼 이겨냈다”고 회고했다. 그는 “다른 또래 학생들과 똑 같이 대하고 대신 마음으로 더 배려해 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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