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임 법무장관 인선 문제를 놓고 당청관계에 또다시 먹구름이 끼고 있다. 열린우리당에서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사실상의 비토론이 나오자 청와대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김병준 교육부총리의 사의 표명 이후 수그러드는 듯하던 양측의 긴장이 재차 고조되는 양상이다.
‘문재인 카드’에 대해 여당에선 실제로 부정적인 기류가 강하다. 물론 개인적인 능력이나 자질을 문제 삼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회전문 인사’, ‘코드인사’에 대한 국민정서를 내세운다. 5ㆍ31 지방선거 당시 문 전 수석의 ‘부산정권’ 발언을 이유로 들기도 한다. 한 초선의원은 “인사권은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이지만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그런 인사를 해서는 안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휴가 중이던 이병완 비서실장은 2일 청와대 기자실을 찾아 “능력도 있고 인품도 훌륭하다면서 안된다고 하는데 이해하기 힘들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인사를 함에 있어 능력과 인품 이상의 자질이 있느냐”고도 했다. 김 부총리의 사퇴 과정에 대해서도 ‘폐습’, ‘구태’, ‘여론재판’ 등의 표현을 써가며 작심한 듯 당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특히 청와대는 통상적으로 개각 이후에 불거지던 인사갈등이 이번엔 인선 단계에서부터 표면화하자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보는 듯하다. 이 실장은 “대통령의 인사권은 국정운영의 핵심”이라며 “인사권이 흔들리는 건 국정 표류를 초래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이날 오전 노무현 대통령이 핵심 참모들을 불러 상황을 점검한 뒤에 나온 것이라 노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실린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당은 이에 대해 공개적인 입장 표명을 자제하는 모습이다. 한 핵심당직자는 “대통령을 보필하는 비서실장이 그 정도 얘기도 못하겠느냐”며 “당으로서는 한 템포 쉬어가는 게 낫다”고 말했다. 김근태 의장측도 “특별히 할 얘기가 없다”며 말을 아꼈다. 공식적으로 대응할 경우 새로운 논란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청와대 관계자도 “우리의 입장을 명확히 하자는 것이지 확전을 생각하는 건 결코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에선 청와대의 공개적인 입장 표명이 가져올 후폭풍에 대한 걱정도 크다. 한 재선의원은 “비서실장이 들이받는 식으로 발언해선 안된다”며 “이번 일로 당청 갈등이 점화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수도권 의원은 “노 대통령이 탈당까지 생각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이런 가운데 당 지도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 실장의 언급에서 노 대통령이 후임 법무장관에 문 전 수석 임명을 강행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한 비대위원은 “우호적인 여론이 급격히 확산된다면 모를까 당으로선 물러설 데가 없다”고 말했다. 후임 법무장관 인선 문제가 당청갈등이 폭발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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